도식적 사유

by 윤여경

아무래도 도식적 사유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도식적 사유란 무엇인가? 나는 말 그대로 '그림적 사유(圖式)' 영어로는 'diagram'라 해석한다. 나는 정보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약 15년간 이 사유를 업으로 삼아왔으며, 공부도 이런 방식으로 한다. 그런데 이 사유가 때론 공격을 받는다. 특히 일본학자들이 이런 경향성을 띄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본학자들의 지나친 도석적 사유로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우려한다. 가령 "그 개념은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라든가 "그렇게 도식적으로 사고하면 위험해요" 등 도식적 사고가 가져오는 편견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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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지적이 상당히 타당하다 생각하는데, 한편으로 이 지적 또한 도식적이란 생각이다. 왜냐면 이 지적 바탕에 도식적 사유를 언어적 사유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우월의식이 다소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언어를 가진 인간이 언어가 없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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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초기 많은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를 탐사했다. 그때 그 지역에는 벌거벗은 인간이 살고 있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들이 벌거벗은 상태로 '우버버허바바'하는 소리를 듣고 미개하다고 판단했는데, 후일 그 지역 언어를 연구한 사람에 의하면 그들의 단어가 영어보다 무려 1/3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혼을 의미하는 단어는 무려 10가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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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우리와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다른 인간종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이를 동물까지 확대할 수 있다. 동물들도 분명 소리나 몸짓으로 소통하는 언어가 있다. 그들의 언어 수준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과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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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폐증 경향성이 높으면서도 축산 시설 디자인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탬플 그랜딘을 책을 읽으며 자폐증의 사고가 '시각적 사고=도식적 사고'가 강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떠올리거나 상상하는데 그래야 단어=언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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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점은 그랜딘은 비슷한 방식으로 소의 언어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녀는 소가 이미지적으로 사고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가 생각하는 방식과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이 유사해 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짐작되고, 소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고 한다. 자폐증과 동물의 사고 방식이 '시각적 사고=도식적 사고'로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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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때론 우리는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언어는 사유의 집이다" 이 말은 언어를 알아야만 사유가 가능하며 '언어가 없는 상태는 사유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 외의 동물들은 언어가 있을까? 만약 없다면 사유가 없을까? 그녀는 인간 외의 동물도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면 그녀가 어릴때 분명히 사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증이 강하면 어릴때 언어장애나 발달장애를 겪기 마련인데 그녀도 그런 장애를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그녀는 언어를 전혀 몰랐음에도 분명 사유하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런점에서 인간은 언어를 몰라도 시각적 경험을 통해 사유한다는 점에서 동물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없어도 사유를 한다. 사실 이를 뒷받침하는 동물행동의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도식적 사고에 의한 사유, 즉 도식적 사유가 바로 동물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본질적 사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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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들의 이 도식적 사유가 갖고 있는 장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즉각성'이다. 문자와 이미지의 차이는 문자는 지금 읽고 있는 글처럼 시간성이 강한데, 이미지는 무시간성이 강하다. 그래서 복잡한 내용을 이미지로 바꾸면 즉각 이해된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들이 함축(일반화)되거나 누락(추상화)되는데 이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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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의 교수인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에는 '팅거러'라는 개념이 나온다. 팅거러는 문제를 만나서 즉각적으로 해결책을 세우고 행동에 옮긴다. 행동하면서 해결책을 계속 수정한다. 즉 팅거러는 해결 계획을 진지하게 고민해 결정 보다는 빠르게 가설을 세우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면서 가설을 수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요즘에는 이런 사람들이 '창의성'이 높다며 각광을 받나 보다. 그런데 MIT의 전설적인 성과들이 자폐증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나왔다는 점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팅거러가 '시각적 사고=도식적 사고'를 하는 자폐증 경향성, 즉 동물의 본능적 사고라는 점을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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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사고에 의한 도식적 사유는 인간의 본능부터 과학 그리고 반성적 성찰까지 스팩트럼이 넓다. 특히 이미지가 범람하는 최근에는 더욱 그렇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등장한 귀납적 사고는 일종의 도식적 사고다. 이것은 경험론을 경유해 실용주의 사상에 이르렀으며 이를 귀추법이라 한다. 미첼 레스닉이 말하는 팅거러는 귀추법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도식=시각으로 따져보는 기호학이 등장했고, 수천년전 사라졌던 아이소타입이 등장해 픽토그램, 이모티콘로 활용된다. 화장실 문과 공항에서 확인하듯 이 문자는 국제적 표준 문자다. 이렇듯 도식적 사고는 이미지로 결과를 함축해야 하는 예술과 디자인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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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 시안을 제안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는 도식적 사고는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도식적 사유가 가져온 즉각성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늘 실수하고 그것이 다양한 환경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디자이너들은 이를 '계획적 폐기' '상징적 폐기' 혹은 '실험정신'이란 말로 합리화했다. 때론 자기의 무식하고 부족한 점을 '시장 경쟁력'으로 포장하면서 사람들을 은근히 속여온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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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분명 도식적 사고는 유용하다. 앞서 언급했듯 사태를 빨리 이해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일본의 도식적 사고는 다양한 번역을 가능하게 한다. 도식화가 빠른만큼 거기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빠른 것이다. 반대로 현재의 우리나라는 도식적 사유가 상당히 약하다.(근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번역도 빈약하다. 최근 디자인담론연구회에서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바우하우스 관련 책을 조사했는데 관련 서적이 터무니 없이 적었다. 저작도 5권 이하였던것 같다. 그 사실을 목도하면서 어쩌면 한국의 학자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이 바로 도식적 사고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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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선 포스팅에서 적었듯, 개인적으론 나는 직업때문인지 기질때문인지 도식적 사고가 너무 강하다. 그래서 사유와 성찰이 너무 빠르다. 어떤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 사람이 동의할때면 이미 난 내 도식을 수정할때가 많다. 이럴때 너무 미안하고 민망하다. 스스로 자제하기 어려운 속도에 화가 날 때도 많다. 때문에 나는 주변에 논리적이고 인과적인 분들을 많이 곁에 두려하는데... 역설적으로 그런분들을 만나면 너무 대화가 즐겁다.(그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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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도식적 사고 때문에 내 건강에 이상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전 이충학 선생님에게 퍼스널 타입 진단을 받았는데, 같이 간 지인과 숨쉬기를 비교했을때 내 숨쉬기가 거의 2배 빨랐다. 생명의 수학에서 인간의 심장 박동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숨을 쉬면 나는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나는 최근 혈관에 문제가 있으니 관리하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즉 도식적 사고=즉각적 행동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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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빠른 판단은 진지한 대화에 장애물이 된다. 자꾸 상대방의 말을 단정하기 때문이다. 대화란 일종의 관계다. 관계는 천천히 즐기는 것이지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화할때는 도식적 사유가 적절하지 않다. 나는 선후배들이나 지인들과 대화할때 상당히 내 주장이 강한 편인데, 이런 나쁜 습관이 나의 관계와 건강에 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식적 사고를 당분간 자제하고, 즉각적 행동도 자제하고, 판단도 유보하는 것을 노력해 보기로 결심했다.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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