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과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수학에 관련된 책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자가 글을 잘 썼기 때문이지만, 돌이켜보면 과학책은 용어들이 익숙해지면 비교적 잘 읽힌다. 때론 용어가 익숙한 역사책들보다 더. 반면 아무리 용어가 익숙해도 철학책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 다소 비논리적인 예술과 디자인책은 더욱 그렇다. 신기한 점은 문학책은 잘 읽힌다. 아무래도 일상의 용어를 사용하고 스토리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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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읽으며 드는 두번째 생각은 과학적 사실은 절대 '단언’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 혹은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기에'라며 단언하곤 하는데... 불과 2년만에 바뀌는 과학적 사실이 너무 많다. 방금 읽은 DNA와 유전, 진화론에 관련 지식에 있어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과학적 참과 거짓을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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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실은 우리 삶에 아주 밀접하다. 가령 먹거리에 있어 유전자 조작이 된 농산물이 그렇다. 누군 위험하다 하고 누군 위험하지 않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옳을까?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달콤하겠지만 어쩌면 그런 '단언'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왜냐면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많다. 만약 그것이 안전하다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마치 50년전 원전이 안전하다고 단언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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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과학에 있어 '단언'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언'을 가장 많이 하는 분야가 과학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은 과학적이기에 맞다는 논리는 중세시대 그것은 신이 만들었기에 맞다는 논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면 중세 사람들이 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듯, 우리 또한 과학(인간, 자연, 우주)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어은 위험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알았더라도 단언하지 못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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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요즘 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소양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래교육과 디자인교육에 대한 유튜브 방송을 했는데, 나는 미래의 중요한 소양으로 '판단력'과 '신뢰'라는 두 단어를 강조했다. 둘을 합치면 '신뢰있는 판단력'이다. 이 판단력의 가장 최고 경지에 이르면 '단언'을 하게 된다.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말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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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을 의심한다면 이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야만 한다. 단언에 대한 대안으로 당장 생각난 단어는 '추론'과 '대화'이다. 추론은 감각경험에 의해, 대화는 의견경청에 의해 진행된다. 보통 단언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감각 경험조차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추론과 대화는 디자인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요즘 많은 지적 받고 있는 분들도 이 두가지 소양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미래 시대에 가장 필요한 소양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가장 부족한 소양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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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가지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나는 '철학'과 '디자인'이라고 본다. 철학은 사유를 하는 분야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추론적 사유를 통해 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는 과정이다. 디자인은 해결을 하는 분야다. 이 또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클라이언트)의 의견에 공감해 함께 고민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실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을 귀납법이라 말하지만 대화와 실험에 의한 디자인을 귀추법이라 말한다. 여기서 귀추법이란 '목적적 가설'로 답보다는 상황에 더 적절한 방향을 찾는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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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철학과 디자인에는 '단언'이 없다.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이 피드백 고리로 연결되어 계속되는 과정만 있을뿐이다. 철학과 디자인은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기에 단언을 경계하고 정답을 유보한다. 답답하게도 계속해서 찾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 답답함이 즐거움이 될 때 철학과 디자인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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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를 졸업했고 한때 과학에 열광했다. <역사는 디자인된다>는 역사를 과학으로 정립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 책을 쓰고 나서 역사나 과학보다는 철학과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철학과 디자인이 사라지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멸종된지 오래고, 필드에서 디자이너도 멸종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와도 결부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철학과 디자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과학은 중요하다. 그만큼 철학과 디자인도 중요하다. 왜냐면 추론과 대화가 없는 단언이 위험하듯, 철학과 디자인이 없는 과학은 위험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