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누군가의 디자인이 너무 안타까워 디자인을 도와줄 때가 있다. 이런경우 회사에서와 달리 왠만하면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왜냐면 회사일은 조직과 시스템이 있기에 나는 부분만을 담당하는 상황이지만,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나 혼자 상황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게다가 그 디자인이 클라이언트의 사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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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디자인 순서는 이렇다. 먼저 클라이언트와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클라이언트는 이 단계에서 이미 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이 디자인과정에 깊숙히 참여하길 원하기에 계속적으로 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대화는 그만하고 빨리 시안을 보길 원한다. 여기서 나는 디자인을 할지 말지 판단한다. "말은 됐고, 일단 시안부터 봅시다" 이렇게 나오면 "아 네에... 저는 안할께요"라고 일을 그만둔다. 어짜피 돈벌겠다고 하는 일도 아니고 돈을 제대로 주는 경우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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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대화에 충분히 응하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그러면 디자인을 진행한다. 이런 상황에선 디자이너가 교사와 산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가르치는 것은 현재 해당 프로젝트의 디자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려준다. 마치 강의를 하듯.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럼 여러 논리들이 나오고 충분히 고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클라이언트도 디자인과정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스스로 디자인을 한다. 아주 논리적으로. 이때 클라이언트 손에서 훌륭한 디자인이 나오면 최선이지만 그런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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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도 디자인을 시작한다. 여러시안으로 보여주는데, 클라이언트는 선택을 위해 요목조목 따진다. 그러면 나는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고 느낌대로 마음 가는대로 고르세요"라고 말한다. 왜냐면 논리적으로 따질 단계는 이미 앞선 대화 단계에서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이미 논리적 방향이 나온 상황에서 굳이 또 요목조목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예쁜걸 고르면 된다. 이런 요구는 이유가 있다. 이미 방향이 결정된 상황에서 여러 시안중 하나를 고를 경우 의식보다는 무의식적 판단이 낫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적절한 실험사례가 나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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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익스터하우스(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는 전형적인 의사결정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네 아파트에 관한 복잡하고도 상세한 정보를 주었다. 정보에게 한 아파트는 안 좋게 묘사되어 있었고, 두 아파트는 중립적으로 기술되어 있었으며, 나머지 한 아파트는 좋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익스터하우스는 참가자들 모두에게 동일한 정보를 준 뒤에 자기가 쓸 아파트를 하나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참가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한 집단에는 정보를 읽자마자 평가를 내리도록 했다. 이 집단은 첫인상에 깊이 의존했다. 두번째 집단에는 정보를 읽고 3분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에 선택하도록 했다. 이들은 의식적 사고에 의존했다. 세번째 집단에는 철자 맞추기처럼 의식적 사고를 방해하는 과제를 3분 동안 하도록 해 정신을 흐트러뜨린 뒤, 따라서 무의식적 사고가 이루어질 시간을 갖도록 한 뒤에 선택을 하도록 했다. 신기하게도 정신을 산만하게 했던 세 번째 집단이 좋은 아파트를 고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다른 두 집단은 그렇게 많은 변수를 다루는 과제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제대로 선택을 하지 못했다."(<통찰의 시대> 에릭 켄델, 5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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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디자이너는 왠지 창의적이고 기발한 생각만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앞서 나의 디자인 과정은 위에 인용된 심리학적 실험과 신경과학의 원리를 나름대로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에게 왜 이렇게 진행하는지 설명 하진 않는다. 왜냐면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를 너무 신뢰하면, 디자이너의 판단에 너무 의지하고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협업이기에 절대 그러면 안된다. 게다가 그 디자인은 나의 미래가 아닌 클라이언트의 미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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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신 15등급시절 한 친구가 내신 12등급 이하의 친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한 적이 있다. 자신은 모든 문제를 대충 찍었는데 내신 11등급이 나왔다며, "도데체 12등급 이하의 친구들은 어떻게 문제를 풀길래 저렇게 다 틀릴 수 있지???" 라며 자괴감에 빠졌다. 그때 내가 이런 과학적 사실들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해 주었을 것이다. "아 개네들은 문제를 열심히 풀어서 그래" 일찍이 이런 현상을 감지한 인지심리학 미술이론가 에른스트 크리스는 의식적인 논리적 추론 과정으로 무의식적 사고를 억제하는 접근을 '자아를 위한 퇴행(regression in the service of the ego)'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디자인이 엉망이 이유도 이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