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은유에서 진리 문제가 실제로 제기된다 하더라도 더욱 중요한 것은 적절한 행위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은유가 참 또는 거짓인가가 아니라 그 은유로부터 비롯되는 지각과 추론, 그리고 그 은유에 의해서 인가되는 행위이다. 정치나 사랑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는 은유의 관점에서 실재를 규정하고, 그 은유에 근거해서 행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은유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우리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근거해서 추론하고, 목표를 세우고, 언약을 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등의 모든 것을 행한다."
<삶의로서의 은유> 조지 레이코프&마크 존슨,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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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은유이론에 빠져있다. 레이코프와 존슨의 은유이론에 의해 오랜 갈증이 다소 해소되었다. 나는 이 언어학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간극을 해소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성민 선생님이 씨앗을 뿌린 은유이론은 나 뿐만 아니라 디자인학교의 몇몇 선생님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 디자인학교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역시 철학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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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우리에게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시킨다. 좋은 말, 나쁜 말은 없다. 말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성된 것이니까.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욕지거리를 한다고 해서 말을 곱게 쓰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상황에 따라 적합한 말을 골라쓰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말의 좋고 나쁨은 없으며 적절함 또한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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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좋은 은유와 나쁜 은유는 있는 듯 싶다. 나쁜 은유는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을 유발한다. '전쟁' 은유가 그렇다. 가령 '인생은 전쟁' '대화는 전쟁' '사랑은 전쟁' '정치는 전쟁' 등등. 특히 마지막 은유인 '정치는 전쟁'은 19세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이후로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을 낳았던가! ㅠㅠ 만약 20세기 사람들이 '정치는 여행' 혹은 '정치는 보약' 은유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면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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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전쟁 은유가 21세기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다고 느낀다. 다행이 인생과 사랑, 대화에서 전쟁 은유는 많이 희석되었다. 요즘은 전투적 인생과 정복적 사랑, 승부를 내는 논쟁을 즐기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다행이다. 반면 정치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쟁중이다. 국내 혹은 국제 뉴스를 읽다보면 전쟁을 암시하는 은유적 표현들이 지배적이다. 학식과 의식, 교양을 갖춘 지식인들, 심지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전쟁과 전투적 은유와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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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누구나 아는 문구다. 여기서 펜은 글의 환유이다. 표음문자 문화인 우리 시대에 글은 곧 말이다. 결국 말은 칼보다 강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의 말로 칼을 이기기는 커녕 말에 칼이 물려있다. 말과 칼이 합쳐서 큰 파괴력이 생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이라 칼을 품은 말은 우리 사회 여기저기 엄청난 상흔을 남긴다. 말한 자와 들을 자, 쓴자와 읽은 자 모두 상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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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단순히 언어의 장식, 상징적 유사성 등 유희가 아니다. 언어의 근본이자 본질이다. 또한 은유는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듯 상대적 진리다. '진리' 이 말은 언어에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있음을 암시한다. 말은 강하다. 은유는 그 강함의 방향을 결정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중요한 것은 코끼리가 아니라 은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