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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기본소득

by 윤여경

오랜만에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얼마전까지 '기본소득'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기본소득'의 제도화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 이유는 '기본소득'이 '기본생활'을 보장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스피넘랜드 법이 등장한다. 18세기 말에 영국에서 시행된 이 법은 농촌의 젊은이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했지만 사회안정은 커녕 사회변화의 거대한 장벽으로 작동했다. 물론 18세기말과 현재의 상황이 다르고, 기본소득과 스피넘랜드 법은 다른 점도 많다. 하지만 큰 틀의 취지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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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기본소득의 제도화에 완전히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 이유는 노동 때문이 아니라 금융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나라들에서 돈을 많이 풀고 있다. 물론 이 돈은 기존에 있던 돈이 아니라 새로 찍어 내는 돈이다. 가뜩이나 금융 인플레가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돈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돈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 돈은 돌아돌아 결국 다시 금융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최근 부동산과 주가가 급등하고, 금융회사들이 엄청난 실적으로 돈잔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으로 이런 기조는 더욱 지속+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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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 많은 돈들을 어쩔 것인가? 어쩌면 숫자에 불과한 이 금융의 거품이 꺼지는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한때 금융위기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금융거품이 빠질때 어떤 외부효과가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아니 우리도 이미 그 고통을 겪지 않았던가.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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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금융자본은 언젠가 반드시 폭망한다. 단지 시간 문제다. 이 시간을 늦춰주고 희생을 완화할 최고의 수단이 '기본소득'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나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의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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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두가지 형태로 제도로 되면 좋을듯 싶다. 첫째는 국가주도형 기본소득이다. 국가는 현재 가장 최대규모의 경제주체이다. 아무리 다국적기업이라 하더라고 군사력이 없는 한 국가에는 상대가 안된다. 국가의 중앙정부가 솔선수범해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여기에 지방정부가 인센티브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좋을 듯 싶다. 가령 소득이 높은 서울이 소득이 낮은 원주보다 기본소득이 높은 것이다. 그럼 소득이 높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케익을 먹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먹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든다. 지방정부가 소득이 낮더라고 이 소득을 분배받을 사람이 줄어들면 먹는 양이 늘어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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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기업주도형 기본소득이다. 기업의 초과이익은 현재 몇몇 주주에게 집중된다. 이 집중을 제도적으로 완화시키면 된다. 가령 직원들에게 주식을 주어 이익을 분산시키거나, 기존 주식시장에서 배당금제도를 더 활성화해 이익을 분산시키면 된다. 지금까지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은 일종의 소유권이나 이익 측면에서 보았지만 이 또한 기본소득의 입장으로 바꿔 보면 좋을듯 싶다. 국가의 시민이 되면 보장되는 기본소득처럼, 그 기업에 연결된 사람에게 보장되는 기본소득으로 인식이 바뀌면 어떨까 싶다. 배당이 기본소득 개념으로 바뀌면 이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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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는 신용승수라는 말이 있다. 신용승수란 국가가 발행한 금융의 가치가 실물과 상관없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신용승수를 '신용창조'라고 바꿔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노동없는 가치(불로소득)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치는 사실 대부분 거품이다. 하지만 때론 거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마치 생맥주처럼. 생맥주를 따를때 거품을 적당히 유지하는게 중요하듯, 경제도 금융거품을 어떻게 유지시키냐가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품은 곧 희망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거품이 넘치거나 맥주에 비해 너무 많은 생맥주를 볼때 기분이 안좋듯, 금용자본에 거품이 과도하면 그 사회의 상황이 않좋다는 신호다.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있고, 앞으로 더 많은 거품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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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안좋은 거품'을 해소할 유일한 길은 '기본소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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