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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Jan 18. 2023

질문이 달라도 너무 다른 세 아이와의 영상통화

저마다 다른 성향을 지닌 우리 아이들

나는 지난주에 서울에서 열리는 연수에 참가했다. 아이 셋을 오롯이 남편에게 맡겨놓고 떠나는 거라 내심 찔리기도 했지만 불편한 마음은 한쪽 구석에 고이고이 접어두고 마냥 설레는 맘을 안고 서울로 향했다. 2박 3일의 기간 동안 아침에는 아이들의 등원준비로 남편이 쉴 새 없이 바쁠걸 뻔히 알기 때문에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 다만 저녁 시간에는 나는 나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쉴 때쯤 그리고 아이들은 안방에 셋이 쪼로미 모여 아빠와 함께 잠자리 독서를 마쳤을 때쯤 영상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때 영상통화를 하니 정말 전쟁 난리통이다. 올해로 8, 6 ,3세가 된 아이들은 서로 핸드폰 앞 1열에 앉으려고 자리쟁탈전을 한다. 심지어 만 23개월 밖에 안된 막둥이도 누나들의 경쟁에 덩달아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엄마~~~"를 간절히 부른다. 이렇게 영상통화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면 셋은 하루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 또는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질문들을 쉴 새 없이 입 밖으로 쏟아낸다.(막둥이는 비록 짧은 문장 위주이며 누나들이 내뱉는 단어들을 듣고 재진술하는 정도이지만) 결국 세 명의 말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나는 아이 셋 중 누구의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다둥맘의 비책을 꺼냈다.


지금부터는 '발언권'을 얻고 이야기하자.
엄마는 지금 너희들의 이야기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째, 둘째, 셋째 누구 하나 빠짐없이 한쪽 손을 천장에 닿을 만큼 번쩍 든다. "저요!"라는 비장한 외침과 함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날 영상통화는 첫째, 둘째, 셋째 순으로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두 바퀴 돌았다. 그러니까 총 6개의 질문에 내가 답변을 하는 과정으로 영상통화 시간을 채웠다.


아이들의 질문을 떠올려보면 첫째는 "같이 자는 이모는 누구예요? 어디에 갔어요? 어떻게 생겼어요? (영상으로) 보여주세요."등 오로지 그날 숙소에서 함께 머물게 된 (나도 잘 모르는 처음 만나게 된) 1명의 연수 룸메이트에 대해서만 지속적으로 질문을 했다. 이와 달리 둘째는 "엄마 오늘 뭐 했어요? 무슨 공부했어요? 엄마 자는 곳은 어떻게 생겼어요?" 등 엄마인 나와 내가 머무는 곳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두 번의 질문찬스를 사용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좀 전에 했던 전쟁난리통에 이뤄진 삼남매와의 통화 자체가 즐겁기도 했지만 첫째, 둘째의 질문 방향이 너무나도 달라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진짜 두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달랐다. 첫째는 18개월쯤에도 이미 낯선 곳에 가면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은 하나 없이 본인이 보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을 향해 직진녀처럼 달려가던 아이였다. 자신의 호기심 해소가 중요한 아이라 어떻게 이렇게 낯가림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타인에 대해 관대하고 잘 안겼다. 반면 둘째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항상 껌딱지처럼 내게 착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이내 울상이 되거나 팔로 나를 꼭 끌어안는 그런 아이였다. 막둥이는 또 막둥이대로 통통 튀는 또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성향들이 집을 떠난 엄마와의 영상통화에서 정확히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은 집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아이들의 성향 차이를 정확하게 느끼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첫째는 이런 편이고 둘째는 저런 편이지 정도의 어렴풋한 생각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통화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셋은 어쩜 이렇게 궁금한 포인트도 다를까. 진짜 진짜 서로 다른 존재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 첫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고 둘째는 감성적이고 공감지수가 높은 편이다. (막둥이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전화를 하고 나서부터 그때 핸드폰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을 쏟아내던 우리 아이 셋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궁금한 포인트가 다르고 그래서 지금도 참 각자의 성향대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딸이라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당연히 이름이 다르듯 성격도 참 다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종종 이런 차이를 잊고 아이들을 둘과 셋 사이에서 비교하고 판단하며 나 혼자 아이의 강점을 저울질하고 편 가르기를 할 때가 많다. 첫째는 이런데 둘째는 이러지 못해(첫째가 나아.) 둘째는 이런데 첫째는 이런 능력이 부족해(둘째가 이 부분은 잘하지). 비교와 판단에서 그치지 않고 그걸로 아이를 나무라면서 말실수를 할 때도 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머리에서는 '아이를 절대 비교하면 안 된다는데.' 하는 생각의 회로가 쉴 새 없이 빨간 불을 내며 돌아가지만 내 입은 이미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다다다다 내뱉고 있다.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는 것, 강점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저마다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반짝거리는 모습을 칭찬하고 세워주는 말을 하는 것.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인 내게는 꼭 필요하고 또 절실히 갖고 싶은 이상적인 능력이다. 현실은 때때로 아니 어쩌면 자주 그렇지 못하지만.


또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우리 세 아이는 모두 다르다는 걸.


사진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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