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먹고살아요

인생의 부싯돌과 마중물

by 티키타카존

오래된 대학생활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만으로도 왠지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대학 입학 후 아무도 미팅을 시켜주지 않아서 내가 주선으로 5명을 모아서 했던 첫 미팅의 기억,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바꿔서 학보(대학교 신문)를 보내 마치 다른 대학 여자 친구가 보낸 것처럼 꾸며서 웃음 짓던 기억, 대학 축제 때 난생처음 콘서트를 보고 환호했던 일, 축제 때나 당당히 들어갈 수 있던 여대를 구경했던 일 등 모두 아련한 기억이다.


공대 전공 수업시간에 배운 몇 가지 법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열역학' 시간에 배웠던 '엔트로피 법칙 (열역학 제2법칙)'이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한다. 엔트로피는 물리계의 무질서한 정도이며, 우주의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만나면 미지근한 공기가 되고, 잘 정돈된 트럼프 카드를 섞으면 임의의 카드 배열이 되는 원리]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자연의 법칙도 이겨내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 모두를 칭찬할 때 사용하는 법칙이다.

'유체역학' 시간에 배웠던 '베르누이의 정리'이다.

[:같은 높이에서 유체가 흐를 때 유체의 속력은 좁은 통로를 흐를 때 증가하고, 넓은 통로를 흐를 때 감소한다. 즉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유체 내부의 압력이 낮아지고, 속력이 감소하면 내부 압력이 높아진다.]

-여의도 빌딩 사이에 좁은 곳을 지날 때 바람이 심하게 더 심하게 불면 이건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학 전공 관련 지식은 이런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 때 전공수업도 열심히 듣기는 했지만 교양으로 들었던 전공 외 과목들이 마음에 남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기도 했다.


'윤강' 과목이 있었다.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수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어느 선배는 화학공학을 전공해서 컨설팅회사에 다니시는 분이셨다. 전공과 연관도 있지만 다른 학문과도 연결성이 있었다. 졸업 후 컨설팅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가진 순간이었다. 사실 은행에 원서를 넣은 것도 은행에서 이런 업무를 하고 싶기도 했었다. 실제로 은행에서 거래 기업의 컨설팅도 한다. 회계, 재무뿐만 아니라 인사까지 전문인력들이 몇 주간 기업에 상주하면서 컨설팅을 하고 결과를 도출해서 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함께 기업의 방향성을 고민한다. 요즘엔 ESG 컨설팅하는 팀도 만들어졌다. 이런 수업에서 내가 여러 가지 지식을 묶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내 글 쓰는 스타일도 이런 모습들이 보일 때가 있다.


'종교의 이해'라는 수업은 종교학과 필수과목이었다. 문과생들이 주로 들었던 200여 명 대강의실 수업에 공대생은 나 혼자였다. 종교학 개론 수업이었는데 어느 특정 종교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가 아닌 일종의 비교종교학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힌두교 관련은 특히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다.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책을 추가로 읽어야 했었는데 나중 해외 어학연수 중 에세이 쓸 때 이 책을 원서로 읽은 후 참고하기도 했었다. 사실 나중에 개종을 했는데 어쩌면 이 수업에서의 내용이 내면 어디엔가 자리 잡아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당시 필수 교양 과목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눠졌다. 신학 관련과 철학 관련 과목이었다. 난 대부분을 신학을 선택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여서 신학 관련은 배경지식도 있고 나름 고민도 해오던 부분들이라 수업시간은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어느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주제 중 하나는 '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할까?'질문이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내가 힘들지 않게 좋은 학점을 받는 걸 보고 나중에 그 수업들을 수강했다가 어려움을 성토하기도 했다.

한국 신화에 대하여 프레젠테이션 했던 과목, 컴퓨터 관련 기본 내용을 배웠던 과목, ‘북한의 이해’라고 북한과의 관계를 다루던 과목 등 지금 생각해 보면 다양했었다.


나의 전체 학점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취업하기에 나쁘지 않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 이런 교양과목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교양과목 덕분에 전체 학점을 높이고, 직업을 선택할 때 도움을 받고, 살아가면서 영향력을 받고 했던 걸 보면 "교양(과목)으로 먹고살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불을 붙이기 위해선 라이터의 부싯돌이 필요하고, 우물물을 길어 올리려면 펌프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이런 소소하게 들었던 교양과목이 내 인생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같은 과 친구들에겐 좀 특이하게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학부 때의 교양수업은 인생의 계기를 찾아가는 나의 과정이었다. 지금도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내 안에 차곡차곡 무언가로 가득 채우면서 그 채워져 있는 것들을 터트릴 부싯돌을 구하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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