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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Jul 29. 2022

텅 빈 놀이터는 기억하고 있겠지

오래된 나와 우리의 추억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집 앞 놀이터를 만난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웠을 그곳엔 지금 언제 그 애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넘쳤는지가  무색할 정도로 적막감만이 돈다. 사실 놀이터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나 내 마음이 투영되어 나에게 변화된 모습으로 슬그머니 다가온다. 늦은 저녁의 놀이터는 어떤 날은 울고 싶을 정도로 쓸쓸했다가, 어느 날은 하루의 바쁨에 고생했다 위로해 주듯 편안한 고요함을 선물한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나의 유년시절이 묻어있다. 오래된 아파트의 그 놀이터의 한편엔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숨어있다. 한창 놀이터의 그네가 신나는 어린 딸은 오늘도 그 놀이터의 그네 위에서 '꽈배기'를 하며 깔깔거린다. 늦은 저녁 텅 빈 그 놀이터는 3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나와 딸의 웃음을 연결해주기 위하여 오늘도 고요함 속에 무수한 추억을 묻는다.


놀이터 안에는 철봉이 있다. 제일 작은 건 막내딸, 두 번째 건 첫째 딸, 가장 높은 건 내 차지다. 중, 고등학교 때 매달렸던 그 철봉은 그대로인데 난 이제 턱걸이 몇 개 하기도 버겁다. 자세히 보면 그 철봉도 내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느새 녹이 슬어있다. 내 나이만큼의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철봉이 반가운 건 나의 이기심인가?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한 느낌 때문인 건가?

아이들의 철봉 매달리기 시합의 심판이 되어본다. 나의 아버지도 나와 동생이 노는 모습을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놀이터 철봉 앞에서 그 옛날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본다. 놀이터의 철봉은 이젠 아버지가 되어 버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는 것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오늘은 퇴근길에 텅 빈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본다. 그 벤치에서 고등학교 때 독서실 간다고 집을 나서서 만난 친구들과의 추억을 끄집어 내본다. 당시엔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었는지 우리들이 만들었던 그 두꺼운 앙케트 노트에 난 긴 터널을 그려 넣었었다. 고등학생 때의 그 보이지 않던 터널은 대학만 가면 벗어나는 줄 알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다른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때처럼 이 터널도 잘 벗어나야지 다짐해본다. 함께 고민을 나눴던 친구들을 놀이터 그 벤치는 기억하고 있겠지.


과거의 그 추억과 느낌은 부지불식간에 나타나 나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정말 머릿속 어디에 꼭꼭 잘도 숨어있다. 내 머릿속의 그 추억을 나와 함께 한 이들도 그들의 머릿속에 또 다른 모습으로 추억을 잘 간직하고 있을까?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듯 그들에게도 소중하기를 기대한다. 서로 만나 그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이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다. 우연히라도 스친다면 내가 그 이들을 알아보기를 희망한다. 그냥 지나치지 말기를. 그 텅 빈 놀이터는 잘 기억하고 있으리라. 나와 그 이들이 함께 한 추억을.


오늘 난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먼 훗날 이곳에서 나의 딸들이 아빠를 기억하며 웃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이 놀이터가 나의 추억을 잘 간직하기를 바란다.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고층 아파트로 덮여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추억의 향기를 어느 한 곳에 잘 품고 있기를 바란다.


고맙다. 놀이터야. 나의 추억을 잘 간직해 주어서.

부탁한다. 놀이터야. 지금의 우리의 추억도 잘 간직해 주기를.


오늘도 난 텅 빈 놀이터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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