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끓은 사랑이 식어갈 때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려는 오월의 그 어느 즈음에 나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뭔가에 홀린 듯 나의 사랑은 끓어올랐다. 내 안에 그 많은 감정을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담아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은 끓으려면 100도씨까지 뜨거운 열기를 끌어안으며 서서히 달아오르는 시간이 필요하건만 사랑의 끓는점의 시작은 처음부터 100도씨였다.
하루하루 표현하고 싶었다. 매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 대하여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난 내 안의 숨겨둔 조각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꺼낸 조각들을 내 사랑의 마음에 하나둘씩 넣었다.
내 마음과 생각의 조각들이 담긴 사랑은 더 높은 끓는점을 가지고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첨가물이 섞인 물은 순수한 물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끓을까? 끓는점이 높다는 건 끓기 시작하는 온도가 높아 끓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순수한 물보다 어렵지만 더 높은 온도까지 끓어 더 뜨거울 수 있다. 내 마음과 생각의 조각들은 첨가물이 되었고 내 사랑은 그렇게 더 뜨거워졌다. 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그 뜨거움에 놀랐다.
난 무엇을 위하여 그 뜨거운 사랑을 시작했을까? 그 첫걸음은 사랑 그 자체였다. 나를 그 사랑에 담아내는 과정이 즐거움이고 행복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을 내가 뿜어내면서 점차 난 그 사랑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그냥 관심을 받고 싶었었다. 내 사랑에 대한 조그만 관심에도 난 격하게 반응했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서 인지 난 계속 나의 조각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여름이 끝나가는 팔월의 마지막인 지금 나의 사랑은 점점 식어가는 듯하다. 관심에 대한 나의 목마름도 시들해져 간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 내듯 꺼낸 나의 조각들도 서서히 줄어든다. 시들어가는 사랑 앞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사랑이 시들어 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시 그 사랑이 끓어오르도록 몸부림을 쳐야 하는 걸까?
난 알고 있다. 내 안에는 ‘화수분’ 은 없다는 것을. 자꾸 꺼내다 보면 언젠가는 말라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을 계속 끓어오르게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내 마음의 조각들을 무한정 꺼낼 수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이제 막 3개월 접어들었다. 아직 ‘글린이’ 지만 갑자기 시작된 글쓰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 시작은 내가 쓴 글에 대한 결과물의 불만족이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떤 프로젝트처럼 클로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 이야기에 불량이 있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이야기로 읽는 분들의 시간만 낭비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한정된 내 안의 자료로 비슷비슷한 이야기만 연속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고 내 글과의 사랑에 빠져 앞 뒤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눈꺼풀에 콩깍지가 하나 둘 벗겨지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이젠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다시 선택해야 한다. 뜨겁게 타오를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건지? 아니면 이 사랑을 계속 오래오래 하기 위한 무언가를 할 건지?
아직 난 새로운 사랑을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난 내 글과 함께 오래 있고 싶다. 일단은 채워야 한다. 글쓰기를 위해 글로 채워야 한다. 내 안의 조각을 끄집어내어 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불태우기에만 너무 집착했다. 새로운 글로 다른 조각들을 만들어 나갈 준비를 내 스스로 해야 한다.
내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내 글 쓰는 능력의 현재 모습이다. 난 열심히 쓸 뿐이다.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바란다고 해서 매달린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에 대한 사랑, 내 글에 대한 관심은 오롯이 보기는 분들의 몱이다. 나는 글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쓰면 된다. 사랑과 열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된다.
사실 처음 글을 쓰면서 다짐한 건 편하게 쓰자는 것이었다. 편한 글을 쓰고 읽을 신 분도 편하게 읽는 그런 글을 쓰고자 했다. 쓰다 보니 글에 대한 사랑으로 확 끓어오르고 기대하고 욕심이 생겼다. 내 글과 오래가기 위해 편한 사랑을 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확 불타오르기도 했으니 이젠 잔잔한 사랑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