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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Sep 23. 2022

소화기암센터 진료를 기다리며

감사해야 할까? 투정 부려야 할까?

건강검진 때 매번 체크해야 하는 항목이 늘어난다. 어떤 때는 혈압이 높았다가 어떤 때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다가 어떤 때는 당 수치가 높았다가 한다. 계속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언제 그 얼음이 깨어질지 몰라 조마조마 하지만 아직까지 그 수치의 경계선에서 잘 버텨왔다. 운동도 하면서 높아진 수치가 약간 내려와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큰 일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진다. 사실, 뭐 ‘언젠가는’ 이라며 예상은 했으나 ‘설마’하고 무시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10년 정도 전부터 시작되었다. 복부초음파 검사하던 중 담낭(쓸개)에 용종이 있었다. 다행히 크기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10 mm 이상이 되면 용종을 제거를 위해 수술해야 되니 매년 추적 관찰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매년 복부초음파는 꼭 검사해야 하는 항목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올 것이 왔다. 크기가 10 mm가 넘어가 버렸다. 이젠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 걱정을 한가득 하게 되었다.


며칠 전 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찰을 받으러 갔다. 난 그냥 상담하러 ‘소화기외과’로 예약했는데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곳은 ‘소화기암센터’였다. 외과와 암센터는 어감부터 확연히 차이가 났다. 왠지 두려움이 덜컥 밀려왔다. 내 이름이 불리기 전에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익숙한 이 상황에 마음이 답답해 온다. 가족이 아파서 10여 년을 병을 추적 관찰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진료실 앞에서 마음 조리며 기다리 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그 대상이 나로 바뀌어 대기 중인 것이다.


내 이름이 불러지고 자리에 앉았다. 의사는 덤덤히 이야기했다. “용종의 크기가 커졌으니 변화가 생긴 겁니다. 원칙적으로는 담낭 제거 수술하는 게 맞습니다.” 담낭은 크기가 작아 용종만 제거하지 못하고 담낭을 제거해야 한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결과를 기대하고 진찰하러 갔는데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지켜봐도 결과는 같고 위험만 커진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아직 암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수술만 하면 되는 거긴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일은 생길 수 있는 것이다라고, 또 더 나쁜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하는 게 최선이다.


스스로 마음의 위로는 사실 너무 교과서적인 답이고 착한 정답이다. 하늘에 더 이상 나쁜 상황이 아니라 지금 발견해서 수술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또 너무 바른 행동 같다.


때론 이런 정답 말고 내 마음대로 뭔가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단지, 내가 수술해야 하는 이 상황을 가지고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에서 감사의 기도로는 마음의 위안을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투정하고 술이라도 진탕 마시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고 엉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상황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기에 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경우들이 많았다.


슬픈 감정, 화를 내고 싶은 감정을 꼭꼭 숨기고 사는 나보다는 막 내 심정을 표현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나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게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것이 잘 돼서 하루하루 웃으며 살아가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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