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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Sep 14. 2022

내가 서야 할 줄인가요?

다양한 나의 줄서기

저녁 약속이 있어서 좀 늦은 귀갓길이었다. 평소 퇴근길과는 좀 다른 루트로 집으로 가려했다. 지하철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러 갔다. 출입구를 나오는 순간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순간 이 줄이 '내가 서야 할 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인 건지? 또 어느 버스에 해당하는 줄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긴 줄에 서기로 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줄을 서 있었는지 아니면 이상한 줄에 서 있었던 건지?를 말이다. 혹 내가 줄을 잘못 선거라면 버스가 도착하면 얼른 뛰어 가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줄에서 시간 낭비한 게 있으니 만회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버스가 도착했고, 다행히 내가 선 줄 어디에선가 시작점으로 해서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무사히 버스를 탔다.


간혹 줄을 고민해서 서야 할 때가 있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도 그중 하나이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나름 잔머리를 굴린다. 앞에 서있는 사람들 수와 카트에 실린 물건들을 어림잡아 내 차례가 빨리 돌아올 것 같은 줄에 선다. 그러나, 여러 변수가 생긴다. 계산하는 직원이 신입직원이셔서 속도가 생각보다 느린 경우도 있고, 물건의 양은 많지 않으나 쿠폰을 쓰시고, 적립을 하시고, 현금을 쓰시고, 현금영수증을 하시고 포인트를 쓰시려고 하는데 비밀번호를 자꾸 틀리시고 하시는 손님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선 줄은 빠르지 않다.


고민해서 서야 하는 줄이 있기는 하지만 때론 무언가를 선착순으로 해결하는 일의 공정한 수단으로 줄서기는 많이 이용된다.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갔다. 역시나 유명한 놀이기구에는 많은 사람으로 길게 줄을 서 있다. 한 시간 줄서기는 기본이다. 5분도 안 되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모두들 그렇게 줄을 서기 때문이다. 원하는 바가 있으니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는 않다.


직장인들도 매일의 줄서기는 계속된다. 한정된 점심시간에 오피스에서 뛰어나온 회사원들로 식당가는 인산인해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빌딩 안에 다 숨어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오늘도 맛있는 식당 앞에는 길게 줄이 서 있다.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중 특이하고 맛있는 점심메뉴는 활력소로 작용한다. 길게 줄을 섰지만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면 차례가 온다. 사실 이런 줄서는 식당에서의 점심에서는 여유로움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설렁탕이나 갈비탕은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나와서 10여분 이상을 기다렸지만 밥 먹는 시간은 금방이다.


이런 겉으로 보이는 줄 서기보다 사실 더 치열한 줄 서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의 줄 서기 역사는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대에서 우스개 소리로 아무 빽도 없었는데 빽있는누군가와 같은 줄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후방으로 배치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빽있는 누군가만 좋은 곳으로 배치하는게 눈치가 보이니 그 줄을 전부 후방으로 배치했다는 이야기이다.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나도 군대 주특기에서는 비슷한 케이스에 해당될지 모르겠다. 내 전공은 화학공학이다. 마침 내가 입대할 당시 의무병이 부족한 시기였다. 화학공학, 화학, 생물학 전공하는 입대 자원들을 6주간 후반기 교육을 시켜서 의무병과를 주던 시기였다. 나도 그 의무병 대열에 끼어서 주특기를 의무병으로 배정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줄 서기가 어긋나서인지 군단 직할 소속 특공대의 소대 의무병으로 근무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은행에서 영업을 할 때도 사실 이런 줄 서기는 필요했다. 좋은 기업의 재무팀장이나 대표를 단박에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닥방(닥치고 방문)’ 영업으로 바쁘신 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바쁜 분들이니 그 기업의 필요를 파악해서 공들인 제안서를 들고 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문 앞 경리직원에서 조심스럽게 제안서를 건네주고 오는 게 다 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나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그 분들이게 줄 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만나야 그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다음 만남을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 그 줄에 잘 서 있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진심이 전달되고 믿음이 쌓이면서 어떤 서로의 필요를 느끼게 될 때가 온다.


어쨌든 이런저런 줄 서기도 결국에는 명확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기 위하여, 밥을 먹기 위하여 그리고 회사에서 나의 본분을 다하고 일을 하기 위한 영업을 위하여 줄을 섰다. 설사 그 줄이 길다고 하면 기다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넋 놓고 기다리기보단 수시로 내가 줄을 잘 서고 있는지 체크해 볼 필요는 있다. 만약 잘 못 서 있다면 나도 위치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내 자의로 서 있는 줄 서기가 아닌 것에 나의 미래가 결정되더라도 중요한 건 깨어있는 것이다. 큰 흐름에 내가 휩쓸려 가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정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또 나의 줄 서기를 시작하면 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학연이나 지연 등을 찾는 것도 이런 줄 서기 시작을 위한 첫 단추를 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그 줄에 계속 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설사 어떤 인연으로 그 줄이 섰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노력하는 방법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다르지만 나만의 잘하는 방법으로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보여지는 진정성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줄 서기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미도 방법도 변한다. 놀이공원의 긴 줄도 더 이상 공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줄 서기에 얼마의 돈을 지불하고 빠른 패스권을 사게 되면 줄 서기를 스킵하고 먼저 이용할 수 있다. 줄 서기의 시간을 티켓으로 파는 것이다. 줄서는 시간이 아까운 어떤 이들은 그 시간을 돈으로 사고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신상품을 사기 위한 새벽의 줄 서기도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대신할 수 있다. 새로운 상품을 기다리는 설렘도 놀이기구를 타려고 기다리는 들뜨는 마음도 돈으로 환산되어 버린 것 같은 씁쓸함이 있기는 하다. 길게 늘어선 줄 서기가 더 이상 공정한 가치로 통용되지는 않게 된 것을 반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도 전통적인 줄 서기의 방법을 탈피하고 있기도 하다. 나만 구시대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SNS에서 소통하고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자주 묻는 게 더 효율적인 만남이고 한번 선 줄을 계속 이어가는 효과적인 수단일 수도 있는 시대이다.


오늘 저녁은 줄 서기가 필요 없는 편안한 친구와 술 한잔 하려 한다. 오랜만에 만나더라고 어떤 줄 서기가 필요하지 않은 친구이다. 내가 너무 줄 서기에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고민도 털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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