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사랑의 어려움
1980년대 출간된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까치가 엄지에게 한 말이다. 만화책에서 있는 말이었는지 나중에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 속의 대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늘 문득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순진한 사랑을 시작하던 어린 시절 내 모든 걸 던져서라도 지켜내고 싶던 사람이 있었는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난 나를 지키면서 사랑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대학 때 토요일 수업이 있었다. 토요일 이른 시간에 당시 여자친구를 만났다. 난 그녀를 커피숍에 앉혀놓고 수업에 들어갔다. 한참이 지난 후 수업이 끝나고 왔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울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그녀를 만나는 것과 수업을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의 차이였을 것이다. 난 그녀를 위하여 뭐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나 보다.
대학시절 성당에서 신부님이 '바위섬' 노래를 미사 중 강론시간에 열창하셨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신부님에게 바위섬은 하느님이셨다. 신앙이 약해서인지 아직 주님에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지는 못한다.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난 아내를 위하여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난 아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내도 나의 그런 노력을 알고 있었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났다. 노력하는 것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생겨났다.
“아빠. 나 아침엔 팬케이크 먹고 싶어 “
난 주말 아침부터 팬케이크를 만드느라 바쁘다. 지난번에는 호떡을 만드느라 힘들었는데 다행히 팬케이크는 손이 덜 간다.
“아빠. 나 수영 배우고 싶어”
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허락한다.
그렇다. 그 사람은 딸들이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아빠다.
“아빠, 초콜릿케이크 먹고 싶어 ‘
먹음직한 케이크를 산다. 그런데 너무 달다.
몸에는 좋을 것 같지 않은 케이크를 먹으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해주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망설이면 그게 나를 위해서 주저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들을 위해 걱정해서 그런 것일까?
무조건적인 사랑에 하나둘씩 나의 생각이 들어간다. 조건적인 사랑이 되어 버릴까 걱정이 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난 고민하면서 사랑한다.
사랑은 어렵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더 어렵다.
다만, 중요한 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순수함이다.
“아빠는 순수함으로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계속 순수하게 사랑하는 아빠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