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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 Feb 17. 2022

나는 이혼녀, 너는 ADHD 4

4. 찌그러지다.

나는 말 그대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빛나고, 당당하고 한 치의 문제도 없어 보였다. 아이로 인한 관계 속에서 나는 주눅이 잔뜩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향했다.




초등학교.

워킹맘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시기에 휴직이나, 퇴사를 아주 많이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들었다. 

나는 워킹맘이지만, 퇴사나 휴직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아주 많이..


아이의 첫 등교날.

뿌듯함과 자랑스러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까? 누군가의 관심의 범위에 들어갈까? '


모든 것이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안절부절못한 것일까? 그저 아이가 단정하게 행동하고, 튀는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길 바랬다.

앞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의 조카는 일명 잘 나가는 엄친아였다.

초등 커뮤니티에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언니는 남편은 외국에 있다 하라고 단호한 조언을 주었다. 

역시나 내가 이혼을 한 것은 범죄는 아니지만, 감춰야 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받았다.


첫 참관수업과 면담.

내 자격지심인지 나의 예민함인지, 아이는 둥글둥글 무리에 섞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주저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손을 번쩍번쩍 들고 이야기를 했고, 많은 학부모가 있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두려움이 없고,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잘 표현한다고 해 주기도 했지만,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한 번은 똑똑한 아이지만, 반복되는 혼자만의 독주는 튄다는 것, 그리고 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엘리트 코스 느낌의 담임 선생님은 첫 면담에서,

아이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극단을 오가는 나의 마음 중 한 편으로 오셨다.


" 아이가 영재인 것 같아요. 이 쪽 교육을 시켜 보신 적 있으세요? "


그러나 한 달 후


" 저의 교편생활에서 이런 아이는 처음이에요. 

혼내도 말을 안 듣고,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감정이 폭발해요. "


담임 선생님께 우리의 가정환경과 유치원 이야기를 눈물 콧물 흘리며, 죄를 지은 것처럼 털어놓았다.

아이는 설명과 설득과 납득이 필요하고, 많은 대화와 인내가 필요로 하다고,

아이와의 대화는 자칫 아이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순간 빠져 들어, 시작했던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화로 마무리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대화를 주도해야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30~40여 명의 아이들을 통솔해야 하는 선생님께, 나의 아이에게 설명과 설득의 시간과 인내심을 할애해 주십사 하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전화기에 학교 번호만 찍히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도망가고 싶었다.


학교 입학 전에 학습을 시키지 않았었다. 

이 학구열 높은 지역에서 다른 아이들은 학교 알림장 쓰기를 문제없이 해냈다.

나의 아이는 연필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에 아이를 남겨 받아쓰기를 시켰다.

하나 이것은 아이에겐 징벌이었다. 아이는 도망쳤고, 담임 선생님은 많이 화가 나셨고, 나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셨다.

나는 아이를 이해 못 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에겐 학교와 선생님은 절대적이었다. 아이를 혼내고 아이를 탓했다. 

서둘러 한글 수업을 시키고, 과외 선생님을 부르고, 아이를 닦달했다. 

그러나 학습이라는 것은 습관의 누적이고, 어느 정도의 자질도 필요했다. 

이 결과 아이는 글 쓰기를 영원히 저주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학부모는 나에게 낯설었고, 또래 엄마들과 어울려야만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어렵기만 했다.

아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지만, 나의 성격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다 간신히 같은 반 아이들로 이루어진 체육활동 그룹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이 그룹에서 들은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의 활동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고, 솔직히 어울릴 수 있는 학부모가 생겼음 하는 바람에, 

활동을 지켜보는 엄마들의 커피와 아이들의 간식을 사 들고 매번 어정쩡하게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엄마가 말을 걸었다.


" OO 이는 이 그룹 활동의 최대 수혜자야. 

하도 학교에서 애가 이상하다고 해서, 처음엔 이 그룹 들어오는 거 좀 그랬는데, 

여기서 애를 보니 아니네. 애들이랑 잘 어울리고 괜찮네. 


덜컥 겁부터 났다.

' 무슨 말들이 오가는 거지? 우리에 대해서 다들 수군거리는 거야? 뭐라는 걸까? 얘가 이상하다고? '


" 아 네 " 

이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뻔뻔함도 아이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도 없었다.

2분 지각을 해도 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그러면 아이는 나에게 모진 소리를 들었다. 

아파트 안에 있는 학교와 놀이터 모든 곳에 눈이 있었고, 아이들끼리의 소소한 다툼도 이슈가 되는 곳이었다. 

엄마들은 멋졌고 열정적이었고 아이들은 똑똑하고 다들 문제 1도 없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찌그러져갔다. 

                                                                                                                                                         -  by 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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