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by 채롬

아이가 3살이던 어느 날 새벽 6시쯤 아이는 자다가 코를 훌쩍이다 울며 깼다.

코가 흘러 불편한가보다 하고는 코를 한번 닦아주려고 갔는데

너무 힘들어하고 찡찡거려 불을 켜보니 옷과 이불에 피가 범벅이 되어있었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휴지로 피를 닦고 콧잔등을 눌러 지혈을 했지만

15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지혈이 되지 않고 코피가 계속 줄줄 흘렀다.

아이는 낯선 상황과 느낌에 놀라고 흥분해서 울며 버둥거렸다.

이러다 과다출혈로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지 공포감이 몰려왔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15분 20분이지, 그 순간은 1시간은 피를 흘린 것 같이 길게 느껴졌다.

남편은 새벽 일찍 출근해서 집에는 아이와 둘 뿐이었다.

남편은 근무가 시작되면 전화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선 119에 아이가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그리고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남편의 직장동료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고

남편은 곧 조퇴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지혈을 하고 있으니 119가 도착하기 전에 코피가 다소 멈추는 듯했다.

코피가 멈춰서 다행이었지만 흘린 피가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119가 아파트 1층에 도착했다며 아이와 함께 내려오라고 연락이 왔다.


옷을 챙겨 입고 내려가 우선 구급차에 탔고 구급대원은 상황을 파악한 후 인근에 이송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군데를 전화해 봐도 비출혈 환자를 받을 여력이 있는 병원은 찾지 못했고 결국 일반병원이 문 열기를 기다렸다 진료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긴급한 상황이 아이였지만 정말 생명이 오가는 긴급한 상황에 이송할 병원이 없다면 얼마나 눈앞이 캄캄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상황이 아닌 것에 감사했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했다.


집에 올라와 진정하고 근처 병원에 진료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온 남편과 함께 이비인후과에 가서 접수하고 진료를 기다렸다. 진료를 기다리는 사이 코피가 다시 터졌다. 아이는 흰자위를 보이며 힘들어했다. 너무나 걱정되어 데스크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진료를 혹시 당겨줄 수 없는지 부탁했다. 다행히 얘기를 전해 들은 담당의사는 순서를 앞당겨 진료를 보게 해 주셨고, 함께 대기를 하던 환자들 중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료실을 들어가며 진료실 앞에 먼저 대기 중이던 환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고 그들은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때 세상이 아직 따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살면서 내가 비슷한 일로 양보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기꺼이 양보하리라 다짐했다.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가 지나갈 때, 누군가 긴급히 도움이 필요한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용기 내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받으며 출혈의 원인이 되는 혈관을 찾았고 그 혈관이 조금 큰 혈관이라 피가 많이 났었고 손으로 잘 눌려지지 않는 위치에 있어서 지혈이 잘 안 됐던 거라고 했다. 출혈이 났던 혈관이 약해서 앞으로 같은 위치에서 계속 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혈 위치를 알려주셨다. 혹여 과다출혈일까 검사를 해봐야 하는 건 아닌지 물었더니 그렇게 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코피가 너무 자주 많이 나면 출혈이 나는 혈관을 지지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지진 부위에 합병증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은 크면서 혈관이 성숙되며 저절로 나아지니 지켜보자고 했다.


그 뒤로도 한동안 괜찮다가 종종 같은 위치에서 코피가 터졌다. 감기나 비염등으로 콧속이 충혈되면 코피가 잘 터지는 듯했다. 콧구멍 입구에 있으니 아이가 가려워서 코를 파다가 코피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지혈해야 할 위치를 아니 전보다 훨씬 지혈이 빨라졌고, 아이도 나도 상황에 익숙해져서 침작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6살이 된 지금도 감기에 걸려 집에 있는 3일 내내 코피를 흘렸다. 이제 아이는 코피가 날 거 같은 느낌이 나면 나에게 와서 "코피가 날 것 같아요" 하고 말하고, 지혈하는 내내 침착하게 앉아 기다린다. 나도 흥분하거나 지나친 걱정하지 않고 지혈하며 아이를 안심시킨다.


나도 어려서 코피가 자주 났었고, 자다가 코피가 흘러 깬 기억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크면서 혈관이 성숙되며 어느 순간 코피가 잘 나지 않게 되었다.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좋은 점을 닮으면 흐뭇하고, 안 좋은 점을 닮으면 앞으로 겪을 힘듦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내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아이가 선택하겠지만 말이다.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며 나라는 존재와 삶에 대해 다시 고찰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