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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엔드 Dec 13. 2024

6. 목숨이 걸린 과학 전국 대회

인정 중독에 걸린 나

중독자가 되었다.

바로 인정 중독자말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나는 진심으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 앞의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서를 썼고 (시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심부전 증상 때문에 먹고 있던 약을 털어먹었다. 심장에 그리 무리가 가지 않는 약이었기에 살았다.


그전에 자살암시, 혹은 유서에 가까운 문자를 보냈었다. 초등학교 때, 함께 과학대회를 나가고 방송부 대회에 참여하며 알게 된 H선생님께 더 이상 힘들어서 버티질 못하겠다고, 너무 죄송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보냈다. H선생님은 내가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다. 아마 이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진작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써보도록 하겠다.)


그러자, 선생님은 오빠 연락처를 알고 계셔서 오빠에게 연락을 했고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빠는 그 당시 자취를 하고 있어서 나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는데, 붉은 손목과 쏟아져있는 약통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는 때로 의식적으로 고통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때로,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실제로는 고통을 표출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짜 나,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 도서,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아마, 내 친구들이 이 브런치 북을 읽으면 매우 놀랄 거라고 생각한다.

'얘가 이런 일을 겪었다고?'라며 의아해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학교에선 엄청 잘 지냈기 때문이다. 중학교 내내 반장, 부반장,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특히 중1 때는 부반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장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고 항상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낸 학생이었다.


과학 시간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 과학동아리도 직접 만들어서 운영하고, 매 수업마다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질문하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선생님께도 나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그 이후 선생님께선 나를 좋게 보셨는지, 항상 수업시작마다 질문을 하셨는데 나의 차례가 되면 "디엔드, 너는 이거 다 복습했고 알 거니까 쌤이 물어볼 필요 없지?"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몰랐던 경우도 꽤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이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나도 스스로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삶에 대해 욕심이 많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으며, 인정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나보단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더 많이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현재는 이게 단점이라는 걸 알고 있고, 받아들이고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 당시 나아지기 위해서 운동, 명상, 수면, 식사 등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해 신뢰가 없었던 상태였다.


과거의 나에 대해 잘 아시는 H선생님께서 현재의 나에게 조언해 주신 부분이 있는데 일단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고 그건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꾸준히 하는데서 오는 건데, 그러나 나는 지금 계속 스스로 약속을 어겨서 나를 못 믿는 상태인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적이 있었나?’라며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은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튼, 2021년은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불면증도 생겼다. 매일 1시간 자고 (사실은 자는 게 아니라, 그냥 뇌가 버티질 못해서 잠깐 필름이 끊기는 상태가 된 기분이었다.) 학교 가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융합과학" 대회였다. 또다시 나의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수상을 안 하면, 그냥 죽어버리겠다고 나 혼자 다짐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살아야 한다는 신호였을까.

시대회 수상, 도대회 수상.



전국대회 출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뭔가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좁은 학교에서 과학 전국대회 진출한 적이 없었기에, 상까지 받으면 다시 삶의 의미도 찾고 멋지게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모든 걸 쏟아부었다. 매일 공부하고 고민하다가 학교에서 야근하는 선생님을 따라서 10시에 나왔었다. 계속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쓰러졌다.


https://brunch.co.kr/@time-limit/35​

그 과정 속에서 미주신경성 실신과 영양실조 진단을 받은 거였다.

학교에서는 두 번이나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갔고, 잠을 못 자는데 정신이 또렷하지 않아서 들이부은 카페인 음료는 심장을 너무 아프게 하고, 뛰게 만들어서 한동안 보건실에서 살았던 적도 있다.


내 친구들이 그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건강 좀 챙겨"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 과학 대회에서 수상을 하지 못하면 죽을 거라고 다짐했기에 전혀 두려울 게 없었다.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나는 대회 준비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아무리 몸이 망가지고 쓰러져도 대회에만 집중했다. 진주까지 가서 컨설팅도 받았는데, 중학생 중에서 나처럼 섬세하고 잘하는 사람은 못 봤다는 선생님의 말에 참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났고, 12월 초.


수업시간에 컴퓨터실에서 타자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과학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디엔드야, 결과 나왔어!!

반 친구들이 다 있는 곳에서 결과를 확인하게 됐다.


목숨이 걸린 최종결과, 그 결과는 바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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