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해와 우울, 내가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은 하교 후에 번호순별로 2명씩 교실청소를 하는 규칙이 있다.
그때는 나의 번호가 다가와서 청소를 해야 했는데 교실바닥을 빗자루로 쓸다가 힘들었던 감정들이 갑자기 훅 올라오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 번 시작된 눈물은 쉽게 마르질 않는다. 그러다가 충동이 올라와서 빗자루를 툭 놓고 사물함에 있던 가위를 가지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손목을 마구 그었고, 피는 사정없이 뿜어져 나와서 휴지를 대충 뽑아 막고 있었다. (나는 당시에 리스트컷에서 강도가 심해져서 약물자해까지 했었다..) 문제는 처음엔 나를 봐달라고 외치던 신호가 이젠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해는 점차 강도가 심해지기 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끊기가 꽤나 어렵다.
그러나,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이게 효과적인 대처방법인지, 비효과적인 대처방법인지 구분하고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당사자는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주변에서 얘기해 줄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고, 대부분 나의 자해행동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아니면, 그들도 어떻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몰라서 망설였을 거다.)
자신을 다치게 하고, 후회가 남는다는 점에서 자해는 비효과적인 대처방법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고, 나는 시간이 지나서 DBT(변증법적 행동치료) 방법으로 자해행동을 줄일 수 있었다. 대다수 자해를 하는 사람들은 이 외에 해소할 수단을 모르거나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이지, 그들을 비난해선 안된다. 비난할 경우 죄책감이 생겨서 자해 행동은 더 강화가 된다. 효과적인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반복해서 시도하다 보면, 분명 어느 순간부터 행동은 개선되고 좋아질 수 있다. 나의 경험상 자해는 몸보다 심리적인 아픔이 더 크고, 당사자도 그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때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숨죽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진짜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너무 아팠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같이 청소하던 친구가 선생님께 "갑자기 디엔드가 사라졌어요"라고 했고, 학교는 난리가 났다.
중1 때 담임 선생님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때문에 자주 뵐 일은 없었지만, 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려고 노력하신 참 감사한 분이다. 선생님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셨고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보단 언니, 또는 인생 선배라고 생각하며 지내라고 하셨다. 크리스마스 때도 혼자 아파하지 말라고, 루돌프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에게 신경 써주시던 담임 선생님께선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러 간 줄 알고 (가방이랑 신발은 모두 그대로 있었던 상태였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께 디엔드 좀 찾아달라고 부탁해서 1학년 선생님들은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나를 찾으러 다녔다.
한 1시간 정도 화장실에서 자해를 하며 울다가 나왔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다. 선생님은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라고 하셨고, 진짜 내가 죽었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고 하셨다. 정말 자살하러 간 줄 알았다고 하셔서 나는 좀 놀랐었다.
나는 그 당시에 잘 숨기고 있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남이 보기에도 많이 힘들어 보였었나 보다.
감정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비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고 내가 내뱉었던 말은
선생님, 신경 쓰지 않아 주셔도 돼요. 저 정말 괜찮아요.
였다. 사실은 정말, 무척이나 괜찮지 않았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나는 그냥 대화를 중단하고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며 학교를 떠났다.
학교에서 도보 5분 정도의 거리에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비둘기가 정말 심하게 많아서 내가 무서워하는 공간이다.) 그날도 비둘기가 정말 많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내 삶의 의미는 뭘까?'라며 고민을 했다. 특히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오랜 기간 했다. 아마 이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30분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멀리서
디엔드!!!!
라고 부르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괜찮다고 말하며 학교를 떠난 내가 마음에 쓰이셨던 모양이다. 그 당시 폴더폰을 사용했는데, 폰조차 꺼뒀기 때문에 연락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시간 대는 담임 선생님의 4살짜리 아이가 하원을 해야 하는 시간임에도, 내가 걱정돼서 차 타고 찾으러 다니셨다고 했다. 한편으론 부러웠다. 선생님의 아이는 정말 사랑받고 있을 거라는 게 느껴져서. (3년이 지나서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쳤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가족들의 울타리 속에서 사랑받으며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행이다.)
“같이 어린이집 가서 우리 딸 볼래? 예쁜 언니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의 나는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그 뒤에 선생님이 혼자 나를 보내긴 불안하다며, 오빠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해서 오빠와 함께 집으로 갔다. 생각해 보니, 오빠에게도 참 미안하고 존재만으로도 민폐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에선 나도 모르는 자살소동이 일어났고, 그 이후 나는 중독자가 되었다.
바로, @@중독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