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엔드 Dec 10. 2024

3. 자해는 시작됐고 엄마는 나를 떠났다

생일은 내 인생 최악의 날이 되었다.

커터칼을 꺼내 들었는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내가 사이코패스가 된 줄 알았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스스로를 해치는 순간에도 무덤덤해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피는 뚝뚝 떨어졌고 통증 때문에 잠시나마 그 힘듦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자해를 한 이유는 "나를 봐달라는 신호"였다.

부모님은 서로를 증오하기 바빴고, 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선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너무 아픈데, 나 너무 힘든데 제발 봐달라는 시그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2020년 4월 중순,

원래였으면 입학식을 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된 새내기로서 학교를 다녔을 텐데 하루종일 집에만 있게 되었다.


COVID-19


그렇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에 개학을 미룰 수밖에 없었고 나의 우울함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출석만 하면 인정 처리를 해줬었다. 우울함에 빠지기 아주 좋은 환경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6월에 개학을 했으니, 그 2달간 나의 상태는 너무 심각해지고 있었다.


손목은 너덜너덜하게 피투성이 된 채로 지내고, 아무것도 먹질 못해서 위액만 토해내고 살은 쭉쭉 빠졌다.


진심으로 이렇게 살바엔 죽고 싶었다.




그동안 엄마는 집을 떠났다.

흑기사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겐 마음이 부서질 듯이 아픈 순간이었다.

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버린 것이다.


처음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모에게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부탁해서 혼자 몰래 부산에 갔다. 중학생이 도대체 뭘 안다고 그 낯선 도시에 찾아갔던 걸까. 그때, 엄마를 거의 4개월 만에 만나게 됐고 남보다도 못한 눈빛을 내게 쏘아댔다. 도대체 여길 왜 왔냐는, 어떻게 왔냐는 말도 함께 했다.

그리고 엄마와 흑기사가 지내는 집에 가서 엄마가 사준 족발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족발 중에 가장 맛이 없었고, 눈물범벅이 된 짠 족발이었다. 흑기사는 몰래 나를 피해서 다른 곳에 가있었다.


엄마와 흑기사가 사는 곳은 작은 원룸이었다.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두 명이 사는 거지? 싶을 정도로 좁았다. 흑기사의 흔적은 곳곳에 보였다. 그가 벗어놓은 속옷, 자주 쓰던 비니. 모든 게 역겨웠고, 빨리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이후엔 나는 '엄마'라는 인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학교에선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폴더폰으로 바꿨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폴더폰을 사용하며 지냈다. 물론, 공기계가 있어서 친구들이랑은 인스타그램도 하고, 연락도 했다. 그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 아픔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도저히 친구들에게 엄마가 불륜을 저지르고 나를 버렸다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엄마는 1년 반 정도가 지난 뒤에, 중학교 2학년 내 생일날 돌아왔다.


나는 모두가 나를 축복해 주는 생일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렇게 내 생일은 최악의 날이 되어버렸다.

(이젠 생일이 다가오면 손발이 저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말하며 오열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인도 그동안 우리를 두고 온 게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너지는 것 같아서, 단 하루도 편하게 잔 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신뢰가 너무 무너진 탓이었을까. 엄마가 본인이 힘들었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듣기가 싫었다. 그동안의 나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은 백색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작은 방에 갇혀있는 사람이다. 방에는 전등도 없고 창문도 없다. 방 안은 덥고 습하며 지옥같이 들끓는 바닥의 열기는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다. 갇힌 사람은 살만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며 탈출구를 찾지만 찾지 못한다. 벽을 긁고 후벼 파봐도 소용없다. 비명을 지르고 벽을 두드려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쓰러져 마음 문을 닫은 채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애써도 위안을 얻진 못한다. 하느님께, 이름을 아는 온갖 성인께 기도드리지만 구원은 오지 않는다. 방 안의 상황은 고문과 같아서 1분도 더 버티기가 불가능한 기분이다. 어떤 문이든 내 앞에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만 내가 찾는 유일한 탈출구는 자살이라는 문뿐이다. 그 문을 열고 싶은 열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 도서,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딱 저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나도 잘 모르겠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둬서 가져왔다.

방 안의 상황은 고문과 같아서 1분도 더 버티기가 불가능한 기분.


내 생일은 하필 8월이라서 지독하게 더웠기에, 엄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와서 방문 앞에서 종일 기다렸고 그 케이크는 내 마음처럼 다 녹아내리듯 무너졌다.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To Be Continu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