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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Mar 14. 2024

일흔부턴 나도 인싸?

'나, 사람 좋아하나?' 

스스로에게도 낯선 질문이었다. 

사실 이건 질문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회사원이던 내가 스스로 내렸던 결론이었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어린 내가 자주 하는 일이 있었다. 거실 바닥에 달력을 까는 일이었다. 아빠 전화를 받은 엄마는 부엌 창고에서 작년 달력을 한아름 안고 왔다. 달력을 한 장씩 틈이 없도록 깔아두면 엄마가 커다란 전기팬을 들고 다시 등장했다. 전기팬이 한가운데 자리 잡으면 그 사이로 김치와 쌈장, 야채가 놓였다. 


사람 좋아하는 아빠는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우리집으로 2차 가자!’를 외쳤던 것이다. 별다른 외식거리가 없던 시절, 친구 집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은 흔치 않은 먹거리였을 것이다(라고 아빠를 변호해본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셋이나 있는 집에 친구를 우르르 끌고 온 만행을 용서할 수 없다!).


아빠와 달리,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어렸을 때도 같은 반에서 한두 명쯤 친한 친구를 사귀고 함께 다니는 편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하다. 사람마다 갖고 태어나는 ‘친구 주머니’ 같은 게 있다면 아마 내가 가진 주머니는 어릴 적 설날마다 허리춤에 멨던 앙증 맞은 복주머니만 할 것이라고 믿었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은 친구가 엄청 많았는데, 그 애의 수많은 친구 중 하나라는 사실에 왠지 쓸쓸해 하면서도 그 애의 친화력을 내내 부러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친구 많은 사람이 되긴 어려웠다. ‘날 때부터 친구 몇 없을 팔잔가 보다’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그러던 내가 아기를 낳고 시작한 두 번째 일은, 사람을 모으는 일. 매일 밤 남편이 들여다보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싶다며 그를 졸랐다. 

“여기는 어르신들이 불편사항 올리는 게시판이야. ‘주차장에 비둘기가 살아서 차에 비둘기똥이 너무 많이 붙어요’라든가 ‘밤 늦은 시간 발망치 소리 좀 조심해주세요’ 같은 글 아니면 찾기 어려운 데라니까.”

아무 댓글도 달리지 않으면 바로 글을 내리겠다고 몇 번이나 설득해 글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2023년생 토끼띠맘 친구 구해요! 
8월생 남아 키우고 있는 엄마예요. 
아기 데리고 가끔씩 단지 밖으로 산책 나가는데, 매번 둘만 나가려니 심심하더라고요. 
같이 유아차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육아정보도 나눌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글 올려봅니다. 
아기한테도 친구 만들어주고 싶고요. 
혹시 토끼띠 친구 맘 계시다면 쪽지 주세요. 


산꼭대기에 있는 우리 아파트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아파트 밖을 나서기가 어렵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아파트단지까지 오려면 깎아 지른 절벽처럼 비탈진 길을 한참 올라야 해서 ‘아랫동네’에 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어린 아기를 안은 엄마가 마을버스를 타는 건 쉽지 않다. 유아차를 끌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기도, 아기띠를 매고 걷기도 버겁다. 출산 후 아파트단지가 내 세상의 전부가 된 건 그래서였다. 


그런데 집 밖을 나서면 또래 아기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늦은 오후가 되면 놀이터에서 공을 차는 초등학생들은 있었지만, 유아차를 타는 아기는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유아차에 아기를 태우고 아파트상가 안에 있는 카페에 들르곤 했는데, 거기서도 아기를 달래며 커피 한잔을 홀짝이고는 집으로 오는 게 다였다. 


분명히 한 명 쯤은 친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글을 올렸고, 올린 치 5분이 채 되지 않아 쪽지가 왔다. 

7월생 남아 키우는 엄마예요.
남편한테 글 올라왔다는 이야기 듣고 바로 연락드려요!

역시나. 친구가 있었다. 

너무너무너무 반가워요.
진짜 너무 반가워요.

‘너무’를 네 번이나 넣어 답장을 했다. 아기 키우는 거 너무 좋은데 너무 외롭다고, 우리 아파트에 아기 키우는 엄마 너무 안 보인다고. 정신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는데, 또다시 쪽지가 왔다. 


3월생 아기 키우고 있어요. 저도 친구하고 싶어요!
4월생 남아 엄마예요. 반갑습니다.

엄마의 수가 네 명이 넘어갈 때, 오픈카톡방을 만들었다. 


서로의 이름 뒤에 아기의 이름과 태어난 달, 아파트 동과 MBTI를 단 프로필을 교환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모든 게 달랐지만 또래 아기의 엄마라는 이유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보다 더한 공통점도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대화가 고팠다는 것. 허기진 사람이 음식을 먹어 치우듯 그날 밤, 우리는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채팅방에 모여 있었다. 


“만난 김에 소소하게 커피 한잔 할까요?”

모임을 제안한 건 나였다. 백일이 되지 않은 아기 한 명은 집에 두고 엄마 다섯, 아기 넷이 아파트단지 안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다. ‘유아차 네 대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걱정하던 찰나, 한 엄마가 집으로 모두를 초대했다.


드디어 약속의 날. 아기에게 새옷을 입힌 후 오랜만에 눈썹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아기를 유아차에 태워 언덕을 올랐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기도 나도 친구를 처음으로 친구를 만나는 날. 


문을 열고 나온 새 친구는 10개월이 다 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웃을 때면 아랫니 네 개가 보이는 아기는 친구를 보자마자 매트 위를 기어 돌진했다. 사실, 친구가 아니라 형 같았지만 아기도 누워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아기띠를 맨 세 친구와 두 아기가 도착했다. 배달 온 커피를 식탁에 올려두고, 아무도 식탁에 앉지 못했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기를 살피고, 칭얼대는 아기를 재우고, 밥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식탁 주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불을 쬐는 사람들처럼. 별 이야기 아닌데도 그렇게 웃음이 났다. 


한 시간을 넘기기 힘들 것 같던 만남은 길어졌고,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집으로 왔다. 떠나기 전, 거실에 아기를 안고 모여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기나긴 우정의 시작이 될 첫날의 기록이었다. 

‘나, 사람 모으는 거 좋아하나?’ 

스스로에게도 낯선 질문이었다. 


몇 년 전, 사뭇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었다. 

‘나는 왜 일하는 거지?’ 

당연한 일의 이유인 생계문제는 일단 뒤로 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출근할 때도 외근을 나갈 때도 야근을 할 때도 잊지 않고 떠올리면서 찾아낸 답은 이것이었다.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나는 끊임없이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기사로, 강연으로 풀어냈다. 하루에 적어도 한 명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많게는 네다섯 명을 차례로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일이 아니라면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줄 리가 없지.’ 

그 무렵의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람 모으는 걸 좋아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세 명이상 되는 모임에서는 무조건 구석자리를 사수하려 애썼고, 사람 많은 곳만 다녀와도 온몸에 진이 빠지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나서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톡 보는 거 제일 귀찮아하는 사람이 오픈채팅방 방장이라니.”

휴대폰을 붙들고 혼자 한 말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일곱 명이 모인 채팅방에서 먼저 이야기도 꺼내고 온갖 이모티콘으로 맞장구치는 걸 보면 나는 ‘많은’ 사람도 좋아하는 게 틀림 없었다. 그때 생각났다.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들. 뒤이어 등장하는 낯익은 실루엣.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가도 친구들만 보이면 어깨가 하늘 끝까지 올라갈 듯하던 아빠의 그림자는 30년이 지나 내가 그 때의 아빠 나이가 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일흔이 다 된 아빠는 은퇴하고 나서도 부지런히 사람을 모으고 다닌다. 

“내일 약속이 있어서 가야 된다.”

오랜만에 딸의 집에 와서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기차표를 끊는다. 그때마다 서운해하면서도 한편 궁금하다. 나도 일흔쯤 되면 아빠처럼 ‘인싸’로 거듭날 수 있으려나. 모르지만 일단 싹은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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