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님, 오랜만이에요.”
(‘에디터님’으로 불린 적이 얼마만이던가…)
“같이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어서요.”
(일? 지금? 나랑?)
아기가 50일이 갓 넘었을 무렵 걸려온 전화였다. ‘일하는 나’를 찾는 사람이라니, 낯설고도 신선했다. 통화 상대는 이전 회사에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었던 A대표님이었다. 퇴사 직후 일로 한 번 만난 후, 2년 만의 통화였다.
“저는 도저히… 지금은 아무래도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일을 고사한 후 전화를 끊었지만, 내가 필요하다는 오랜만의 메시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도저히 지금은 일 못 하는 게 맞겠지?”
“잠도 아기침대 옆에서 10분, 20분씩 겨우 자는데 일을 할 수 있겠어?”
넌지시 묻는 내게 남편이 되물었다.
“아니. 못 하지. 못 하는 게 맞아.”
갑자기 부푼 마음을 애써 눌러 고이 접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 온 건 한 계절이 지나 해가 바뀌고 나서였다. 모 기업에서 의뢰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기업 내부사정으로 세 달 후에야 작업이 재개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아 연락했다고. 괜찮다면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다시 받았다. 제안받은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다.
“전 그 일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에디터님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휴대폰 너머의 상대는 몰랐을 것이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이 다섯 달 동안 아기를 키우며 내가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다는 것을. 그의 한 마디는 달디 단 사탕처럼 내 귀에 스며들었다. 스르르 녹아버린 사람처럼 대답했다.
“저도 그 일,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단번에 오케이를 외칠 수는 없었다. 일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의 육아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남편(육아동지)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다. 아기를 재운 후,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협의한 내용은 이러했다.
작업기간은 1월말부터 3월말. 남편이 개학하는 3월초까지 집중적으로 작업할 것
개학 전까지 월수금 오후엔 내가, 화목토 오후엔 남편이 번갈아 일할 것
정해진 시간에 다하지 못한 일은 아기를 재운 후 밤에 할 것
다음 날, 연락주신 분께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3월초까지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지, 3월말까지는 모든 작업이 완료될 예정인지, 일정에 변수는 없을지 확인한 후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달콤한 말 한마디에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린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이것이었다.
“달콤함 때문이 아니라, 짜릿함 때문인데?”
호기심. 서른이 넘어 길지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서야 깨달은 나의 특징이다. 새로운 일 앞에서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고민할 시간에 해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난다고 믿었다. 믿은 대로 무작정 부딪치고 깨지다 보면 결론이 났다. 어떨 때는 가슴에 잔뜩 멍이 든 채로, 어떨 때는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린 채로. 어떻게든 결론은 났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는 게 낫지 않아?”
고통을 피해도 된다고 처음으로 말해준 건 남편이었다. 내가 눈앞의 벽을 향해 곧장 돌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벽 앞에 한참을 서 있는 사람이다. 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는 생각한다.
‘내가 꼭 넘어야 하는 벽인가?’
이 벽을 넘는 데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면 그 길로 돌아선다. 내 길이 상처투성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그의 길은 곧고 단정하다. 10년 넘게 같이 걷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같은 길을 걸은 법이 없다. 그의 길이 아름답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의 길을 닮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의 길에 없는 ‘그것’이 내 길에는 걸음마다 있었으므로.
‘그것’은 짜릿함이었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궁금함. 빨리 가고 싶다는 조바심이 섞여 짜릿함을 만들어냈다. 요즘 말로 하면 나는 오래된 도파민 중독자다. 자극은 채찍이 되어 나를 달리게 했고, 멈춰 있을 때면 늘 속으로 바랐다.
‘재밌는 일 뭐 하나 없을까?’
태어나 처음 겪은 육아는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껏 해본 그 어떤 일보다도 바쁘고 변수가 많은 일이었지만, 달리는 게 아니라 멈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SNS를 들여다볼 때마다 태풍의 눈이 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는데 단 한 사람, 나만 그대로인 기분.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로인 집 안에서 스멀스멀 자라난 불만이 말하고 있었다.
‘나도 움직이고 싶어!’
그러던 찰나, 일하자는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그러니 녹은 듯 오케이를 외칠 수밖에. 다가올 미지의 날을 생각하자, 드디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동네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하는데, 느껴졌다. 피가 도는 기분. 잊었던 일하는 세포들이 깨어나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신명나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두드려야 했던 건 노트북이 아니라, 돌다리였다는 걸. 돌다리도 두드려보라는 옛말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가을에 고사했던 일이 왜 한 계절을 돌고 해가 바뀌어 내게 다시 왔는지,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담당할 일은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거래처의 사정으로 일정이 재차 변경될 여지는 없는지 좀 더 꼼꼼히 살폈어야 했다. 더 이상 마음껏 부딪치고 깨지다 새살이 돋을 때까지 누워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치면 가족들도 아프다는 사실. 고통의 시간이었던 미지의 시간을 견디며 뼈아프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새벽 네 시에 좀비처럼 일하다 무심코 펼친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짜릿함에 속지 마세요. 내가 꾸준히 좋아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박창선,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중에서
짜릿함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짜릿함 대신 꾸준함을 택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되뇌며 마감을 코앞에 두고 다시 생각을 짜냈다. 이 일은 언제 끝날까. 끝이 나긴 하는 걸까. 시작에 신나하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끝을 기다리는 내가 무기력하게 노트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