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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Mar 07. 2024

실현할 자아가 사라졌다

자아를 찾으려고 회사를 나왔다. 

아무리 찾으려고 애써도 찾을 수 없던 자아가 

엉뚱하게도 그 모습을 드러낸 건 

출산 한 달 후, 

제왕절개 흉터가 막 아물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직업의 목적은 자아실현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잔뜩 상한 채 끌려다니듯 다니던 다섯 번째 회사에서 나는 실현해야 할 자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아침이고 밤이고 볕이 필요한 식물처럼 창가에 놓인 침대에 누워 지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하루를 오직 자아를 찾기 위해 보냈다. 자아를 찾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 했는데, 좋아하는 걸 찾자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종일 누워 잠만 잤다.  


“자아를 찾으려고 퇴사했는데,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더라고요. 제 자아는 잠인가봐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 북토크에서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객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만 웃지 않았다. 이어서 물었다.

“해야 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자의로 좋아서 하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두 명의 작가는 망설임 없이 좋아하는 일을 말해주었다. 세 명의 작가 중 한 명이었던 나의 선배는 해야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배도 나랑 비슷하구나. 안도했다.


아기를 낳고 나서 거의 모든 시간은 육아시간으로 탈바꿈했다. 먹고 자는 게 전부인 신생아는 자다가 수시로 울며 젖을 찾았고, 아기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돌아서면 또다시 아기는 배고파 울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평온함도 사실은 살얼음처럼 얇아서, 아기가 곤히 잠든 걸 확인하고 커피를 내릴라치면 이내 천둥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샤워도 사치였다. 남편이 있을 때 후다닥, 가본 적도 없는 군대에서 군인들이 한다던 초고속 샤워를 떠올리며 몸에 물을 마구 끼얹었다. 끼얹고 있는데 불현듯 ‘이제 글 좀 써볼까’ 싶어졌다. 출산 전, 남편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나 언제쯤이면 다시 글 쓸 수 있을까?”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득하게 묻는 내게 그는 3초도 걸리지 않고 대답했다.

“한 달?”

“왜?”

“한 달 후면 수술부위 어느 정도 아물지 않을까?”


역시. 그는 어떤 철학적인 질문도 물리적으로 받는 재주가 있다. 얼마 전 같이 갔던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 후 몇 주가 지나면 극심한 고통은 사라질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글방 하는 시간이 두 시간이잖아. 두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 글방 다시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다. 다시 시작하는 데는 거창한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은 지 한 달 반, 기댈 것이라곤 살얼음 같은 잠깐의 평화뿐인 상태에서 글방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안 해도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던 나를 받아준 그 곳으로.


그가 말하는 ‘글방’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책방 부비프에서 여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다. 매주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방 주인장에게 보내면, 내가 쓴 글은 모임날 오후에 근사한 PDF 파일에 담겨 도착한다. 함께 글을 나눌 사람들의 글과 함께. 정해진 시간에 줌(ZOOM)에 접속해 각자 쓴 글을 읽고, 참여한 모두가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 날선 비난은 금물. 모든 글에는 반짝이는 지점이 있는데, 글방 친구들은 그 지점을 발견해 공감하고 칭찬하고 응원해준다.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심지어는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내적 친밀감은 엄청나다.


매주 수요일,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모니터를 켰다. 초등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읽고, 다른 이의 글에 눈물을 훔치고, 오랜만에 만난 낯익은 얼굴에 반가워했다.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틈틈이 생각했다. '뭘 쓰지?'

대부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은 채로 화요일 밤에 책상 위에 앉았다. 손 가는 대로 글을 써서 책방 주인장에게 보낸 후, 다음 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글과 맞이한 세 번째 여름, 또 한 편의 글을 썼다. 제목은 글쓰기 방학. 만삭의 몸으로 더 이상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게 어려워지면서 글방을 그만둬야 했고, 언제 끝날 지 모를 ‘글쓰기 방학’을 앞둔 심경을 적은 글이었다. 쓸 땐 안 그랬는데 읽으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모니터 속 모두가 울고 웃으며 나를 보내주었다. 먼 길을 배웅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두 달 만에 돌아온 것이다.

“벌써요?”

책방 주인장이 나를 걱정했다.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하는 생각뿐이었다. 무엇보다 쓰고 싶은 게 엄청 많았다.


새벽에 아기를 재우고 식탁 앞에 앉았다. 노트북 옆에 휴대폰을 놓았다. 휴대폰 메모장에는 그 동안 쓰려고 메모해뒀던 이야기가 두서없이 쌓여 있었다. SF 영화 속 우주 정거장을 닮은 민트색 수술방에 누워 하반신이 붕 떠 있는 기분을 즐기다 보니 내 옆에 우는 아기가 누워 있던 수술날 이야기, 마취가 풀리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데 아기가 없는 빈 배에서 온갖 태동이 마지막 인사하듯 지나간 이야기, 요가음악에 맞춰 들숨 날숨을 번갈아 쉬며 드디어 앉는 데 성공한 수술 둘째날 이야기. 드디어 앉아서 수술한 배에 가득한 피를 보고 놀라서 의사를 불렀던, 그건 지금 나는 피가 아니라 수술할 때 나온 피딱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야기, 이후에 날짜별로 기록된 조리원 생활.


그 중 하나의 이야기를 골라 썼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산부인과 의사가 내 가슴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만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가슴부터 보여줘야 했던 산후조리원 원장과의 만남도.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가슴 이야기를 썼다. 정확히는 가슴이 아닌 젖 이야기였다. 아기에게 모유를 준 후, 잠든 아기 옆에서 쪽잠을 잤다. 자다 깨면 식탁 위에서 모유수유 이야기를 썼다.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힘듦은 ‘이걸 어떻게 글로 쓸까’ 생각하다 보면 지나갔다. 한 문단 쓰고 아기를 달래고,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와 이어 썼다. 앞 문단과 잘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기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훨씬 기쁘지만, 외롭기도 했다. 아직 말을 모르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종일 아기 기분을 살피다 보면 내 기분은 고사하고 배고픈 것도 잊어버린다. 그런 하루의 중간에 잠깐 빈 화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 위에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 화면에 털어낸 이야기는 절대 혼자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내일이면 글방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읽어줄 거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나 말야. 글 쓰는 거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표정이 달라, 글 쓸 때.”

식탁 위에서 허겁지겁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매주 옆눈길로 바라보는 남편이 말해주었다. 하루를 통째로 다 써도 찾을 수 없었던 자아가 마침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친 듯이 정신없을 때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하게 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몰아치는 폭풍 같은 육아의 시간 한가운데서 글쓰기에 이어 두 번째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아기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몰랐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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