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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ug 23. 2023

회사를 안 다녀도 괜찮을까?

"아기 이름 말야. 라하 어때? 사막을 가르는 자유로운 영혼 같지 않아?"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응? 글쎄..."



임신 막달, 부부가 해야 하는 일 중 이름 짓기는 꽤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아기가 자라서 원하는 이름이 있다면 바꾸겠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부모가 붙여준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름 첫 글자에는 남편의 성을, 두 번째 글자는 내 성을 붙이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대망의 마지막 한 글자.

김라O


마지막 빈 칸에 딱 들어맞는 한 글자를 찾느라 골몰했다. 가까운 친구, 친구의 아기, 좋아하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름을 종이에 모두 써서 한 글자 한 글자 붙여봤다. 종이보다는 기계와 친한 남편은 챗GPT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라'로 시작하는 이름 100개 뽑아줘."

김라빈
김라디
김라나
김라라
김라김
김라뿐
.
.
.


빠르고 친절한 GPT작명소는 온갖 기상천외한 글자를 붙여 순식간에 이름 100개를 완성해주었다. 내 종이에 적힌 이름과 GPT가 지어준 이름 중 어울리는 이름을 모았다. 이 중 눈에 띈 이름, 라하. '라하야' 하고 부르면 목구멍까지 공기가 통하는 기분이다. 시원한 이름처럼 바람따라 이리저리 자유롭게 살 것만 같은 이름. 단번에 '이거다!' 싶었다.


그런데 아빠 될 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이가 너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보다는 어느 정도 제도와 교육의 틀 안에서 착실하게 자랐으면 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졸업 후엔 회사도 잘 다니고, 차근차근 미래를 쌓아가는 어른이었으면 한다고. 그의 말에 뜨끔했다. 학교와 회사 근처 골목길에 흩뿌려진 내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골목을 배회하는 아이였다. 학교에 가기가 그렇게 싫었다. 학교 가는 버스에서 내리면 곧장 교문으로 가지 않고, 학교 근처 골목을 서성이곤 했다. 교실 창밖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나가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체육복을 갈아 입고 쉬는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가, 비를 쫄딱 맞고 돌아오기도 했다. 야자감독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고 도망 가는 건 일찌감치 도가 튼 일. 1층 현관에 있는 거울 뒤에 운동화를 숨겨두고, 감독 선생님이 다른 교실로 간 틈을 타 잽싸게 뛰었다. 숨겨둔 운동화를 신고, 그 자리에 실내화를 벗어두면 끝. 운동화를 신고 달리며 맡는 밤공기가 그렇게도 시원했다.


학교에서 기르지 못한 착실함은 회사에서도 당연히 길러지지 않았다. 수차례 이직을 거듭하면서 신기한 변화는 점점 '회사 밖의 회사'를 다니게 됐다는 점이다. 첫 번째 회사는 근태가 빡빡한 곳이었다. 8시30분 정각에 회사 정문에 사원증을 찍어야 했고, 1분이라도 늦은 직원은 그날 오후 게시판 '지각자 명단'에 올랐다. 사무실에는 예외없이 칸막이가 쳐져 있었지만, 입구 쪽 자리에 있던 내 모니터는 우스갯소리로 '공용 모니터'라 불릴 정도로 모두에게 잘 보였다.


두 번째 회사는 출판사의 한 팀이 독립해, 사무실을 따로 차린 형태였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근무했기에 본사의 감시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출근시간에는 더 이상 쫓기지 않고 카페라테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점심시간엔 혼자 요가원에 갔다.


몇 번의 회사를 짧게 다니다 그만두고 만난 마지막 회사의 모토는 '언제 어디서든 일해도 된다'였다(이 모토는 자주 '언제 어디서든 일해야 한다'와 혼동되곤 했지만.). 공유오피스 한 칸을 빌린 사무실보다는 카페에서, 인터뷰이의 회사 앞 로비에서, 이동 중 지하철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았다. 코로나가 닥치고는 외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집에서 일했다.


마침내 회사를 나온 후에는 마음이 끌리는 곳에서, 끌리는 대로 일했다. 밥 먹고 나서 식탁에서, 동네카페의 좋아하는 테이블에서, 모두가 잠든 새벽이나 동이 터 오는 아침에 노트북을 두드리는 일이 많았다. 앉을 자리와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 유랑민'이 된 것이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좋겠다!"를 연발하며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적당한 답을 고르기 어렵다. 사실은 내가 더 큰 소리로 "좋겠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그들이 부럽다. 나도 매일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길에 오르고, 매달 말에 들어오는 월급에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무엇보다 하는 일이 뭐냐는 물음에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던 이전이 그립다. 비행기나 병원에서 서류를 쓰다 직업란에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사고 싶은 물건을 두고 최저가 쇼핑몰을 뒤지며 며칠을 머리 싸맬 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불안함이 엄습할 때 자주 생각한다. 회사생활을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았겠다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는 사람의 머릿속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아기의 이름을 두고도 망설이고만 있다.


사실은 나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기가 착실한 사람으로 자라길 원한다. 빠져나와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학교를 빠져나오려고 구태여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성실히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회사 안의 역할과 관계에 금방 지쳐버리기보다는, 그 안에서 적당히 기싸움도 할 줄 알고 도움도 주고받을 줄 아는 능숙한 어른이 되길 바란다. 그래도 아기가 나를 닮는다면? 회사를 꼭 다녀야 하는 거냐고 내게 물어온다면?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결국에는 "혼한 삶도 결혼하지 않은 삶도, 아이가 있는 삶도 없는 삶도 똑같이 괜찮듯이 회사가 있는 삶도 없는 삶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더 낫고 덜 나은 삶은 없다고. 모두가 다 비슷하게 괜찮고 한편으로는 괜찮지 않더라고, 충분히 겪어본 엄마의 눈빛으로 말해주고 싶다. 착실한 사람이 되든, 자유로운 영혼이 되든 어느 편이든 다 괜찮다고. 그러려면 나부터 당당하게 "회사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정말 회사 없이도 괜찮을 수 있을까?


  


글쓴이의 말


이 글 뒤에는 정체 모를 '프리랜서'라는 말 대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으려는 저의 분투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남편이 자리 잡았으니 편하겠네.", "이제 집에서 아이만 키우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주변의 말, '육아도 힘든데 좀 쉴까' 하는 스스로의 유혹을 딛고 일하는 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은 갑작스러운 자궁수축으로 입원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출산을 앞두고 병실에서 쓰고 있습니다.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내려놓았고, 언제 일을 시작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바라는 미래를 선물하는 기분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To be continued! 곧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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