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업 들으러 가는 길, 새벽정원을 걸으면 나뭇가지엔 보송한 꽃 대신 삐죽한 칼날 모양 잎이 돋아나 있었다. 행여나 베일까 주머니에 넣어둔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등으로 잎 끝을 죽죽 긋고픈 충동이 일곤 했다.
세상에 뾰족한 것은 나의 관심거리였다. 교회의 첨탑은 날카롭게 깎은 연필을 닮았다. 그중 사람의 마음은 가장 가파른 산이었다. 산 안으로는 두 갈래의 마음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머리는 날카로운 첨탑의 끝에 닿고 싶었는데, 마음은 늘 갈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문학은 너무 작았고, 세상은 너무 컸다. 작은 세계에서는 자주 길을 잃었고, 큰 세상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지트였던 학관 십자로에는 친구들이 늘 손인사를 했다. 하루가 지나면 담배동산 옆 빈 깡통마다 꽁초가 쌓였다. 담배 피는 친구들은 학교 나무를 연상케 했다. 학교 나무에는 노란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관이 꽂혀 있었다. 사시사철 말라 죽지 않도록 영양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나무는 죽고 싶을 때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죽음의 죽음.
내 방은 침대와 책상, 행거 하나가 전부였다. 낮에 들은 말이 소화되지 않는 밤이면 솟은 가슴 사이가 조여와, 시퍼런 멍이 들 때까지 주먹을 쥐고 연신 쿵쿵 쳐대곤 했다.
옆방에는 부산에서 온 여자애가 살았다. 어느 날 밤에는 뱀이 기어가는 소리가 났는데, 그 애가 덮은 이불이 벽을 스치는 소리였다. 한 층에 열 개는 족히 넘는 방이 붙어 있던 하숙집 가벽은 서로의 얼굴만 간신히 가려줄 정도로 얇았다.
그 방에서 과제를 하고, 연애를 했다. 세면도구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와 겹쳐 있는 행거에서 예쁜 옷을 골라 데이트를 하러 갔다. 하이힐이라도 신었다가는 꼬꾸라지기 십상인 하숙집의 비탈길, 남자친구는 꽃을 들고 서 있었다.
다툼으로 떨어져 살게 된 작은언니의 집은 1000번 버스 종점, 대화역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던 언니가 날보고 어색하게 웃으면 “보고 싶었어. 잘 지냈지?” 사이좋게 어깨를 맞댔던 말의 허리가 휘청했다. 2000번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면 허리가 두 동강나 머리는 발바닥에 붙었고, 손가락 끝까지 꼬인 팔이 옆구리에 칭칭 감긴 ‘말’이란 놈이 뚜둑뚜둑 관절소리를 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뭐냐고 물어오면 “내일의 해”라 말하던 날들이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불만 켰다, 껐다 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온몸에 모서리가 돋은 나를 참는 것이 주먹 만한 알사탕을 삼키는 것만큼 더디던 날들이었다.
믿음대로 내일의 해는 뜨지 않았다. 뜨겁던 해의 온기만이 점차 죽어갈 뿐이었다.
(20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