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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Oct 20. 2022

두 번째 휴가

바닷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고, 잤냐고, 요즘 많이 바쁘냐고 묻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아빠가 조금 다쳤어" 한다. 직감적으로 조금이 아니 라는 걸 알 수 있다. 약속을 취소하고 다음 날 기차표를 예매한다. 

"많이는 아니고, 허리가 조금 골절됐대." 

허리가 '조금' 골절될 수 있는 거냐고 다그치자, 그제야 말이 빨라진다. 엄마도 사실은 겁이 났던 모양이다. 


사람은 가끔 이상한 데 꽂힌다. 테이블보에 한번 꽂히면 테이블보가 조금만 틀어져도 달려가서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아빠는 철 지난 장미덩굴에 꽂혔다. 철제아치를 따라 자라는 장미덩굴 줄기가 조금만 아래로 쳐져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을 장미덩굴을 정리하러 올라가야 한다며, 엄마에게 사다리를 잡아달라고 했단다. 그날 아침, 약속 준비를 하던 아빠 눈에 하필이면 장미 한 줄기가 띄었고, 밥 하는 엄마에게 부탁하기가 눈치 보였던 아빠는 혼자서 아찔한 높이의 사다리를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따뜻한 햇볕과 달리 유난히도 바람이 매서운 날이었고, 아빠의 사다리는 휘청하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빠는 필사적으로 철제아치에 매달려서 생각했다. '내가 소싯적에 배구 선수도 한 사람인데, 이 정도 높이를 못 뛰어내린다고?' 안정감 있는 착지를 기대하며 뛰어내린 아빠는 일어나지 못했다. 

국이 식어가는데도 아빠가 오지 않자, 밖으로 나온 엄마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사다리를 보고 간담이 서늘해져서 119를 불렀지만, 아빠는 예정된 약속에 가겠다며 엄마를 말렸다. 결국, 함께 온 일행과 영덕 가는 고속도로를 탄 아빠는 의성에서 되돌아왔다. 


떨어진 게 아니라 한 번 매달렸다 자의로 뛰어내린 덕에 천만다행으로 신경 손상은 면했지만, 7번과 8번 척추뼈는 빈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척추뼈는 가만히 두면 저절로 붙지만, 뼈가 붙을 때까지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태어나 처음 겪는 통증에 겁 먹은 아빠는 의사의 말을 잘 들었다. 입원복을 갈아 입고 허리보조기를 찬 후,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병원 밥이 싱겁다는 투정도, 답답해 죽겠다는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았다. 


하루 두 시간, 면회시간에 맞춰 찾아간 아빠는 시무룩해 보였다. "젊었을 때는 그 정도 높이 껌이었는데, 이제 안 되더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잔소리를 장착하고 갔지만,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한 글자라도 꺼냈다간 가뜩이나 쪼그라든 아빠가 땅 끝까지 꺼져버릴 것 같아서. 대신 위로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 병원에 입원한 어르신들 중에 아빠가 제일 젊대. 젊어서 뼈도 금방 붙고 금방 집에 갈 거래." 

"진짜?" 

아빠의 눈이 잠깐 커졌다. 

"그럼그럼. 여기서 간호사님들 말씀 잘 듣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괜찮을 거래." 

침대를 눕혀 달라더니, 얼른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자겠다고,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다친 것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도 오지 말라고. 불을 꺼주고 병원을 나왔다. 


사실, 아빠의 병원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야자를 하다가 엄마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놀라서 찾아간 병실에서 아빠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한 손에 링거를 꽂은 아빠는 나더러 아빠 옆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서울에 갔었다고. 서울역에서 끝자리가 1로 끝나는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돌아다녔다고. 


출근하는 듯 나간 아빠는 사실 출근한 게 아니었고, 아빠를 찾는 전화에 엄마는 엉겁결에 아빠가 아파서 입원했다고 말해버렸다. 입원할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좀처럼 약속을 어기는 법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 밤이 어둑해져서야 나타난 아빠는 나일론 환자라도 되어야 했다. 화환과 화분이 병실로 날아들었고, 병원 침대에 앉아 TV를 보며 사람들의 전화를 받다가 며칠 후 퇴원했다. 하루종일 뭘했는지는 엄마도 나도 들었지만,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빠의 휴가 사유는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 있다. 


대학교 때 쓴 <첫 번째 휴가>라는 시에 그 이유를 상상한 부분이 있다. 다른 날처럼 출근 전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던 아빠는 그날따라 변기에 튄 일곱 방울의 오줌 방울을 발견했다고. 그 길로 서울행 기차를 탔다고. 시의 마지막에서 아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 첫 번째 휴가데이." 


15년이 지나 다시 입원복을 입은 아빠의 "젊었을 때는" 레퍼토리를 들으면서 실제로 듣지도 않고 쓴 일곱 개의 오줌 방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러자 '이번이 아빠의 두 번째 휴가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엔 나일론 환자가 아니라 진짜 환자인 아빠는, TV도 보지 않고 병원 침대에서 태아처럼 잠만 잔다고 했다. 아빠의 두 번째 휴가가 너무 길어지진 않길, 몸은 아파도 마음만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길 아빠의 보호자가 된 딸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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