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함부로 꿈꾼 대가(1)

by 마음코인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오래전 그날, 단 하루 동안 했을 뿐이었던 고깃집 아르바이트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것은 겨우 한 번뿐인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 시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훗날에 고생담으로 회고하게 될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내가 그날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이른 저녁이었다. 전날에 면접을 보러 한 차례 방문했음에도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안으로 들어섰을 때 면접을 봐주었던 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에 있는 부점장과 여직원이 호기심을 보이며 내게 서슴없이 말을 걸어왔다.


"스물일곱 살이면 여기 일하는 애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네."


"그동안에는 일 안 하고 뭐 했어?"


사실 그 무렵에 나는 8년 넘게 해 온 소설 쓰기를 관두고 대학원을 자퇴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일이 년이라도 소설 쓰기를 일찍 관뒀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와 함께 27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았다. 작가가 되는데 실패했다는 자각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상기시키는 듯한 그들의 말에 나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그들의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사실 어떤 말을 해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몇 년간 나는 등단을 준비하기 위해 고시원과 강의실을 오가면서 종일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생활만 반복해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얼마 뒤에 주임의 지시를 받은 선임 아르바이트생이 나타난 뒤에야 그들의 관심이 옮겨졌고, 그제야 나는 겨우 한숨 돌린 느낌이었다.


앞서 들은 것처럼 여느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마찬가지로 선임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다. 선임의 나이를 물어본 부점장은 서로 통성명이라도 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과묵한 인상인 그와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선임이 안내해준 방으로 가서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2층 주방 끄트머리에 있는 숯방으로 뒤따라갔다. 화재 현장처럼 벽이 죄다 검게 그을려져 있고 재가 바닥에 군데군데 흩뿌려져 있던 그곳에서 곧장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임의 지시대로 함께 쭈그려 앉아 숯판을 만들고, 그것을 점화기에 굽는 작업을 반복했다. 환기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숯판을 털어낼 때마다 가루가 계속 날려서인지 목이 금방 따끔해졌다. 코를 파면 까만 가루가 뭉텅이째로 나와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열악한 근로 환경에 속으로 치를 떨다가 한번은 선임에게 여기서 계속 일하면서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런 걸로 따지면 군대도 사람 몸 망치는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나는 눈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아서 갔다 오지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이곳의 환경이 군대만큼 열악하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숯판이 벽의 절반 정도를 채울 무렵에 나와 선임에게 또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귀에 꽂은 무전기로 응답한 선임은 나를 1층 주방의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기 가득 쌓여 있는 종이박스와 포댓자루들을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처음이라 드는 요령도 없어서 그의 절반 정도만 가슴팎에 움켜쥐고 따라갔다. 몇 차례 더 함께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일을 반복한 뒤에 폐지 줍는 어르신이 들고 가기 용이하도록 가로수 아래에 분류해 놓고 나서, 선임은 식당 정문 옆에 위치한 창고 문을 열었다.

한동안 비가 온 탓에 버리지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아 두기만 했던 플라스틱 통들이나 박스들이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여 있었다. 선임은 꼭대기에서부터 그것들을 끄집어 내려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차가운 길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흩트려놓기 시작했다. 나는 눈치껏 그것들을 주워들어서 가로수 아래 가져다 놓는 작업을 반복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통행에 방해가 되는 더러운 폐자재들을 피해서 돌아가는 것이나 그들이 한겨울에 얇은 옷만 입고 나온 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물론 실제로는 몸에서 계속 땀이 나서 추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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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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