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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20. 2021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일(1)


  지금 살고 있는 원룸으로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변기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에는 혼자서 매일 사용하는 변기가 곰팡이 때문에 너무나도 지저분해진 상태였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사실은 화장실 변기가 곰팡이가 자라나기에 최적의 장소인 모양인지, 오줌 방울이 자주 튀는 변기 테두리는 물론이고, 변기 시트와 뚜껑, 변기와 가까운 벽타일에도 매일 조금씩 곰팡이가 들러붙어서 이제 본래의 깨끗한 표면은 칙칙한 갈색 점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오줌을 누고 나서 매번 샤워기로 주변을 청소하는데도 그렇게 더러워진 것을 보면서 불쾌감과 함께 그 끈질긴 생명력에 약간은 놀라운 마음마저 갖게 될 정도였다.


  더는 청소를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화장실에서 나온 뒤 휴대폰으로 변기 청소 용구부터 알아보았다. 이제 보니 나 혼자서만 겪는 문제는 아닌 듯, 갖가지 변기용 락스와 솔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구매한 내역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집 앞의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과 유사한 제품을 사 와서 포장지를 뜯었다. 세면대에 락스와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서 풀고 둥근 변기용 솔을 꼼꼼하게 묻혀서 본격적으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오로지 나 혼자 만들어낸 곰팡이와 찌든 때들이었음에도 더럽고 거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부당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뿐만이 아니라 잘 싼 것을 치우는 일도 이렇게 힘든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산다는 것은 몸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매일매일 지워내는 일에 불과하다는 어느 시 구절도 떠올랐다. 변기 곰팡이와의 연관성 때문인지 몇 년 전에 보았던 아버지 방의 화장실도 떠올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화장실이 왜 갑자기 더러워졌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 화장실은 내가 이제껏 살면서 본 화장실 중에 가장 더럽게 느껴지던 화장실이 분명했다. 그 시절에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한테 왔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얼굴을 비출 때, 아버지의 방 안에 딸린 그 화장실 문은 늘 열려 있었고, 나는 그곳의 처참한 내부를 매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청소 좀 하라고 나무라면서 왜 이렇게 더럽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자신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아마 환기가 잘 안 돼서 습기가 차서 그런 모양이라고 대꾸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화장실 안쪽에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어서 그곳으로도 어느 정도는 환기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환기가 안 되는 것을 의심하는 대신 한 번은 의아해하다가 뚜껑이 열려 있는 변기 물탱크 안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변기 버튼이 고장 나 있었던 탓에 물을 내릴 때는 물탱크 바닥에 있는 마개를 손으로 직접 들어 올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탓에 일을 볼 때마다 항상 팔뚝까지 물에 젖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버튼을 고치지 않는 아버지를 미련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말했다. 물탱크 뚜껑을 늘 열어 놓으니 그 안에 있는 검은색 물곰팡이들이 밖으로 퍼져 나간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만 아버지는 어떤 확신을 갖고서 말했다. 그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나는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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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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