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코인 Feb 22. 2021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일(2)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내 생각이 틀리고 뜻밖에도 아버지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에 아버지는 포장용 끈을 이용해서 임시방편으로 변기를 고쳐 놓고 난생처음으로 화장실 청소도 한 차례 말끔하게 해 놓았는데, 그런데도 그곳에서 자잘한 곰팡이들이 새롭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정말 물탱크 뚜껑이 열려 있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일까? 정말 아버지 말처럼 환기가 잘 안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의문을 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과 그때의 의문들은 곧 일상의 다른 중요한 일들에 밀려서 자연스럽게 잊히고 말았다.


  그러다가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변기 청소를 하다가 뜻밖에 그 일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몰랐던 이유를 지금에서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왜 아버지 방에 딸린 화장실이 어느 순간 그렇게 더러워졌는지를. 그것은 물탱크가 뚜껑이 열린 채로 방치돼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고, 화장실 내부에 환기가 잘 안 됐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 이전에 오랫동안 아버지 방 화장실 청소를 했던 사람이 더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명백하면서도 간단한 그 답을 생각하면서 조금 허탈함을 느꼈다. 왜 그동안 몰라주었을까, 라는 생각도 저절로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이유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오래전에 쾌적한 화장실에서 누리던 편안함이 편안함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누군가의 마땅한 노동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하다가 생각보다 힘든 변기 청소를 직접 해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집 안의 다른 번거롭고 성가신 청소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 일을 어머니가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 더러움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닦아 내는 그 일들을.


  어느 순간 나는 변기 청소를 멈추고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사실도 모르고 과거에 곰팡이가 자꾸만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와 함께 억측을 늘어놓았던 것이 세삼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미루고 미루다가 제때 닦아내지 않은 곰팡이 같은 부끄러움이 그 순간에 마음속에도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일(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