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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16. 2021

원치 않은 악역을 맡아야 하는 사람(3)

  그렇지 않아도 그 무렵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근로 선생님들의 근무 기간도 거의 다 끝나갈 시점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자리를 빌어서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조금은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동안 학습지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놀이 활동이나 체육 활동도 아이들과 함께했던 나와 다른 선생님들은 주로 소감으로 아쉬움이나 시원섭섭한 마음을 드러냈고, 원장과 최 선생님은 서로 만담하듯 아이들이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자라왔는지에 대한 얘기를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어쩌면 두 선생님은 아이들과 많은 정이 든 선생님들을 떠나보내는 마당에 더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얘기들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그 아이는 센터에 받으면 안 된다고 다른 학부모가 전화로 얘기하더라고요.”


  “말썽꾸러기 P 다음에 S가 센터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산 넘어 산처럼 느껴지데요.”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S를 비롯하여 현재 큰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몇몇 아이들이 과거에 센터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조금은 놀랐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심리 상담을 받을 정도로 정서가 불안정한 몇몇 가정의 형제 남매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해 성경읽기와 성경쓰기를 처음 시행하게 됐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금껏 수없이 화를 냈을 것이 분명한 원장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연민 같은 감정도 느꼈다. 물론 그 시절의 원장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 왠지 뒤늦게 알게 된 것 같기도 했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해가 지나면서 센터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적응해 감에 따라 덩달아 원장도 이전보다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체 안 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야 하는 악역을 누군가는 억지로 맡아야만 센터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동안 맛있는 음식을 못 만들어줘서 미안하더라고요. 부족하지만 많이 먹어요.”


  이제껏 너무 아이들에 대한 얘기만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원장은 별안간 선생님들에게 주의를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사실 알고 보면 원장은 화를 잘 내고 자기주장이 강한 것뿐만이 아니라 매일 30인분의 점심식사 준비나 또 그만큼의 설거지나 화장실 청소 같은 궂은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 회의 시간에 종종 강조하곤 했던 책임의식을 자신도 마땅히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나나 다른 선생님들을 함부로 부리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 사실을 처음으로 자각한 나는 뒤늦게 느껴지는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늘 맛있는 밥 대접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어려움 없이 마치게 된 것 같아요.”


  그 짧은 말에 원장은 성우 쌤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대답했다. 얼굴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쑥스러운 웃음이 마치 무장해제라도 된 것처럼 번졌다. 어쩌면 찰나에 드러난 그 순수한 표정이 감춰져 있던 원래 얼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 순간에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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