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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14. 2021

원치 않은 악역을 맡아야 하는 사람(2)

그날 그 일의 발단이 된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이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끼리 피구를 하면서 놀던 와중에 S라는 남자아이가 같은 3학년인 또래 아이에게 놀림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평소와 다르게 화를 잘 참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나의 권유로 다른 아이가 사과하자 씩씩대면서 도리어 더 달려들려고 했고, 내가 안으면서 달래주려고 하자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빠져나오려고 했다.


  처음 겪는 그 상황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발을 질질 끌면서 계속 발버둥 치는 S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한 것은 흥분한 S에게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들이었다. 나와 다르게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 그들 중 일부는 곧장 선생님을 데려 오겠다고 하면서 센터로 향했고, 그때까지 곁에 남아 있던 S의 친형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게 바꿔 주었다. 


  이내 내 설명을 들은 S의 엄마 또한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현재 일하는 중이어서 당장 가지 못한다고 사정을 말한 뒤에 가만히 안아주면 S가 진정될 거라고 하면서 간단한 대응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곧장 시키는 대로 해보았는데, 아까처럼 별 효과를 보진 못했다. 얼마 뒤에 두 번째로 전화를 하자 엄마는 자꾸 전화를 받는 탓에 일이 더 늦게 끝난다고 하면서 도리어 내게 화를 냈다. 그 무례한 태도에 덩달아 화가 나려는 것을 참으면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이 센터에 늦게까지 남아 계시던 논술 선생님을 데리고 온 것은 한 가지 다행이었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지만 논술 선생님이 오고 나서도 S는 진정되지 않았다. 평소에 정 많은 할머니처럼 아이들을 대하시던 논술 선생님이 큰 소리로 혼을 내자 S는 지지 않으려는 듯 이전보다 더 크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교문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힐끗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뒤에 원장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이전까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던 S를 결국 진정시킨 사람은 뒤늦게 나타난 원장이었다. 차에서 내린 원장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그러하듯이 어디서 못된 행동을 하고 있느냐고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자 S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장 겁을 먹고 조용해졌다. 이제껏 S를 달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한 나로서는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는 결과였다. 실전에서는 감정적인 위로보다 화를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절하게 체감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S가 진정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원장은 이 시간까지 남아 있던 내게 뒤늦게 관심을 두고 말을 걸었다. 나는 근무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함께 피구를 하자고 하는 아이들의 요청에 못 이겨서 함께 놀아주다가 화가 난 S를 말리게 됐다고 대답했다. 원장은 조금 미안해하는 어조로 늦게까지 아이들을 봐주어서 고맙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원장의 주름진 얼굴은 다른 때보다도 유독 고단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이제껏 이런 일들을 숱하게 겪어오면서 아이들을 돌봐온 원장의 노고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S의 일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뜻밖에 난감한 일을 겪어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원장을 성격적으로 좋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던 시각이 다소 편향 됐다는 것을 알게 돼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 시내의 한 식당에서 원장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회식을 하며 원장의 얘기를 듣게 된 것도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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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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