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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11. 2021

원치 않은 악역을 맡아야 하는 사람(1)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G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곳의 원장이 성격적으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제 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조금 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아이들이 밥을 남기거나 공부하지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거나 심하게 떠들거나 하는 사소한 일들을 참지 못하고 하루에 몇 차례씩 화를 내곤 했다.


  물론 그녀가 화를 낼 때마다 늘 강조하는 센터의 규칙과 다른 아이들이 덩달아 헤이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이 우는 것도 모자라서 겁에 질려서 종일 주눅 들어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토록 심하게 고성을 지르는 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실제로 아이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자칫 연약한 정신 속에 트라우마가 남을 우려를 무릅쓰고 저렇게 고함을 지르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녀에게 더더욱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장이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실제로 꾸짖음을 당하는 아이들이 겪는 피해에 관해서는 추측만 하는 게 고작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한 번은 아이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긴 했다. 하필이면 그 계기라는 것이 잔뜩 화가 난 원장과의 일대일 대면으로 찾아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성우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다 큰 어른이 아이들한테 거짓말을 하면 되겠어요?”


  선생이어도 봐주지 않겠다는 듯한 큰 소리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의 내용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말을 더 듣고 나서야 나는 전날 점심시간에 식탁에 올랐던 매생이 미역국이 사실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일컬은 말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국을 남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원장은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기독교의 가르침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원장은 사실이 배제된 말은 무조건 거짓말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나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억울한 마음에 나도 아이들을 아끼는 것은 마찬가지고,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얘기했을 때도 원장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공부만 잘 가르쳐 주고 가면 되고, 아이들 인성 교육은 남은 우리가 잘할 것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내 기를 꺾으려고 했다. 그런 말까지 듣고 나니 나는 대화가 잘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더는 가져볼 수가 없었다. 저렇게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사람이었다니... 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마음속에서 한 가지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화를 잘 낼 뿐만 아니라 알고 보니 자기주장도 강한 원장을 예전보다 좀 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했다. 예전에는 단지 화를 내는 모습만 안 좋게 보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이전에 크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말과 행동도 자기주장의 일방적인 피력이라고 생각할 만큼 원장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 분명했다.


  일례로 그동안 원장은 점심시간 이후에 성경공부시간을 따로 만들어서 모든 아이들에게 매일 성경 낭독과 성경쓰기를 시켰는데, 그즈음부터 나는 그것을 자신의 종교를 따르게 만들려는 나쁜 음모로 생각하게 되었고, 두세 달에 한 번씩 상점 스티커가 많은 아이들만 추려서 롯데리아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들을 자신에게 좀 더 복종하게 만들려는 질 나쁜 계획으로 보았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은 원장이 아이들 각자가 생일 때마다 센터에서 준비한 선물을 전해 받는 것처럼, 자신도 기브앤테이크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너희들에게 선물을 받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사람이 어쩜 저리도 일관 되게 자기 생각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다음 주에 자신의 생일이 됐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에 그 말은 농담으로 내뱉었을 확률이 높긴 했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그런 걸 조금도 감안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라도 더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거기에는 과거에 원장에게 들은 꾸중 때문에 손상 됐다고 느낀 나의 위신을 다시 회복시키고 싶은 알량한 이유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그런 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러니까 원장에 대해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던 그 일을 겪은 뒤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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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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