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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n 05. 2021

가까스로 고맙다고 한 말(1)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그날 고향 집에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줄 선물로 산 것은 크릴오일이었다. 그것은 며칠 전부터 집 앞 홈플러스에 갈 때마다 계속 눈에 밟히던 특가 상품이었다. 세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샀을지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을 살 때만큼은 아버지 건강에 이상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현재는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실조증을 앓았다. 그래서 3개월도 넘게 대리운전 일을 쉬어야 했다. 그나마 그 기간 동안 약을 꾸준히 먹은 덕분에 어지러움은 사라지긴 했지만, 의사로부터 막힌 혈관을 뚫는데 좋은 크릴오일을 먹으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한 사실을 우연히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 것은 어느 날 몸 상태가 어떤지 내가 물었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기도 했다. 시간이 그렇게나 흐를 때까지 한 번도 사 먹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나중에 혹시라도 재발하면 어떡할 거냐고 나무랐다. 아버지는 그동안 아무 일 없는 걸 보면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다 나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한심한 말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넷 쇼핑도 할 줄 모르는 아버지 대신 차라리 직접 가격 비교를 해서 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내심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크릴오일을 산 뒤에 그날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 다 돼서였다. 거실을 가로질러서 불을 켜자 주방에 설거지가 한가득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일하러 나간 모양인지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가방에 든 크릴오일 팩을 꺼내 조미료들과 비닐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식탁 한편에 놓아두었다.


  아버지가 뒤늦게 그것을 본 것은 늦게까지 대리운전 일을 하다가 해가 뜰 무렵에 집에 오고 나서였다. 점심이 지나서 잠에서 깬 아버지는 주방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고는 저것을 네가 샀느냐고, 얼마에 주고 샀느냐고 물어보며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내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별로 안 비싸다고 말했는데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캐물었다. 내가 3만원 밖에 안 한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싸냐고, 홈쇼핑에서는 6만원도 넘게 판다고 하면서 장사치들을 욕하다가 싸게 잘 산 거라고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겉으로 기뻐하는 내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늘 가족에게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구매 수완이라도 칭찬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어쩐 일로 아버지는 전화로 직접 프랜차이즈 치킨까지 주문해 주는 것으로 보답의 제스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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