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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24. 2021

최저시급 사기꾼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6)

'이 인간들이 그동안 담합을 했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조금 실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렵에는 편의점에 대해서도 마음을 조금은 열어 놓게 됐던 것 같다. 때마침 집과 아주 가까운 위치의 편의점에서 알바생을 구하는 모집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크게 상관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위층에는 행정복지센터가 있고, 맞은편에는 공립 초등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위안을 주었다. 설마 주변에 공공기관이 두 군데나 있는데 뻔뻔하게 법을 어기거나 하진 않겠지 싶었다.   

 

  평소에도 종종 이용하던 편의점이었기 때문에 친숙해서인지 찾아갔을 때 크게 긴장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중년의 남자 점주는 이전에 자주 왔었다는 말에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집이 가깝다는 사실이나 편의점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의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주름진 점주의 인상이 푸근하게 느껴져서인지 나 또한 이전의 면접들과는 다르게 좋은 예감을 느꼈다. 다만 이제껏 너무 수동적으로 대답만 한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혹시라도 자신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한 번은 내 쪽에서 능동적으로 질문해 보기로 했다. 나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최저시급은 당연히 주시는 거죠?”


  예상과 다르게 점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른 말을 했다.


  “음... 이력서에 적힌 편의점이 혹시 어느 곳이니?”


  “을XX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3개월 정도 일했었어요.”


  실제로는 구두로 계약한 기간을 다 못 채웠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혹시 CU 편의점 말하는 건가?"


  "오래전이어서 거기인지 다른 곳인지 헷갈리네요..."


  혹시나 꼬치꼬치 캐물을까 싶어서 알면서도 말을 삼갔다.


  "사장 이름 기억나?"


  "글쎄요..."


  "정X희?"


  "......"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 놀랐다. 가맹점도 다른데 어떻게 거기 있는 점주 이름까지 다 알까 싶었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점주는 재차 물어보았다.


  "거기서는 최저시급을 받고 일했니?"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음... 우리는 그렇게는 못 준다."


  점주는 가져가라는 식으로 손에 들고 있던 이력서를 내밀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든 나는 두 뺨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럽게 거절 의사를 전해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그 순간 약간의 충격과 함께 직감적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 없이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인간들이 그동안 담합을 했구나...'


  그러지 않았더라면 GS 점장이 CU 점장의 이름을 친구라도 되는 양 정X희? 라고 부르면서 맞는지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GS와 CU 편의점 모두 당연하다는 식으로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보니 뭔가 짜 맞춰지는 것처럼 첫 번째 점주가 처음에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것은 사실 얼마 전에 두 번째 점주에게 들은 말이기도 했다. 둘은 모두 다른 편의점에서도 최저 시급을 안 주는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편의점에서 정보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은밀하게 담합하는 소통창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확신하는 담합 편의점은 총 세 군데였지만,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몰랐다.


  나는 얼얼했던 얼굴이 내부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화로 상기되는 것을 느끼면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최저시급을 주지 않았던 정X희 점주를 신고했을 때처럼 똑같이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은 번호를 누르는 손이 조금은 떨렸다. 이윽고 연결된 담당자에게 나는 방금 전에 편의점 면접을 보러 갔다 와서 알게 된 사실들을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나의 울분과 담합을 한 게 분명하다는 고발의 내용과 무관하게 담당자는 시종일관 침착했고, 상담에 필요한 대목만 정확히 짚어서 내게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경우에는 GS 편의점에 오늘 면접을 보러 가셨고, 그 후에 일하게 되신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내가 그렇다고 하자 담당자는 피고용인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고소하는 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 A지청으로 찾아와서 고소장을 작성해야 한다는 정보도 알려주었다. 물어보니 그곳은 내가 있는 곳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함께 고소장을 작성해야 하고, 통화 녹음이나 문자 내역 같은 증거 자료를 지참해 온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폭로의 말을 늘어놓았던 나는 담당자의 대답에 땀이 식는 것을 느꼈다. 10개월 전에 고소했을 때는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해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전화 한 통이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시간과 돈을 써가며 애써 두 발로 찾아가서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손해가 누적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고소해서 제가 얻을 수 있는 보상 같은 게 있을까요?"


  그렇게 물어보자 담당자는 그런 건 전혀 없다고 딱잘라서 대답했다. 나는 좀처럼 할 말을 찾지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도보의 왼편에 또 다른 GS편의점이 있는 게 보였다. 전화를 받으면서 정처 없이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멀리 와 있었다. 이 근방에서는 어디를 가든 편의점이 있었다. 현재 아크릴 벽 너머에서 태연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저 청년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청년이 각각의 편의점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묵묵히 일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근로 여건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그러자 뜻밖에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했다. 시간 쓰고 돈 써서 고소를 해봤자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 내게 돌아가는 이득은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점주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일하고 있는 저들의 처우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여지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말을 기다리고 있던 담당자에게 생각을 좀 더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장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다시 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법을 지키지 않은 몰지각한 점주들뿐만이 아니라 범법행위를 알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나 또한 똑같이 이기적인 인간인지도 모른다는 자각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런 게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차라리 중요한 건 이기적인 사람이 될지언정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인 것 같았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생고생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건 최저시급 사기를 당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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