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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23. 2021

최저시급 사기꾼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5)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게는 못 줘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내부에는 총 네 사람이 있었다. 카운터 쪽의 남자와 여자 중년인은 상당히 밀착해서 얘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왠지 부부 사이 같았다. 반면에 카운터 맞은편에 서 있던 코트 차림의 남자와 목도리를 멘 여자는 말없이 떨어져서 서있었다. 나는 카운터 쪽으로 인사하면서 다가갔다.


  “혹시 알바 면접 보러 오셨어요?”


  중년 여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맞은편의 남자와 여자를 불렀다.


  “시간 됐으니까 두 분도 이리 와 보세요.”


  점주의 말이나 같은 위치에 나란히 서게 된 것으로 보아 두 사람도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인 것 같았다. 모집 글에는 분명 한 명만 모집한다고 돼 있었는데... 설마 단체로 면접을 보게 하려고 부른 것일까? 설마 했던 안 좋은 생각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점주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름과 신상정보도 물어보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모집 글에는 최저시급으로 적어두긴 했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렇게는 못 줘요. 이 주변에는 다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혹시 최저시급 받으려고 오신 분 있으시면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평일 오전에 젊은 사람을 세 명이나 불러 놓고서 기껏 한다는 말이 그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없이 뒤돌아서 걸어갔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예전처럼 신고해서 최저시급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수개월 동안 군말 없이 일 잘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듯이 신고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정서적으로 피곤하게 느껴졌다. 일하는 동안 또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는 판단도 없지 않았다.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뒤에 또다시 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뒤따라 나왔다. 걸어가다가 한 번 더 뒤돌아보니 여자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남자와 나는 하필 가는 방향이 같아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날려서 기분 나쁘지 않냐고, 대기업도 아닌 편의점 주제에 동시 면접을 보는 게 웃기지 않냐고,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말하는 게 웃기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함께 흉을 보며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둘 다 아무 말 없이 가다가 각자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편의점 점주뿐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과도 앞으로 아무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3    


  세 번째이자 마지막 편의점에 간 것은 단지 거리상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편의점에 갔다 오고 나서 다소 힘이 빠지긴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아르바이트 지원을 하게 되었다.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초등학교 급식실이나 고깃집처럼 힘든 곳들을 골라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이후에 기다리던 연락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면접관들이 말한 대로 아직 군대를 갖다 오지 않은 게 실격 이유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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