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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n 05. 2021

가까스로 고맙다고 한 말(2)

"니 먹으라고 시켜놨다고. 빨리 나온나"

 아버지는 내 방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린 뒤에 식기 전에 빨리 와서 먹으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던 나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막 들기 시작한 선잠에서 깨고 말았다. 얼떨떨한 정신으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저녁 7시였다. 이른 저녁에 잠을 자려고 하는 것과 이른 저녁에 억지로 잠을 깨워 치킨을 먹이려고 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잘못된 일인지를 머릿속으로 가늠해보던 차에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니 먹으라고 시켜놨다고. 빨리 나온나."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생색내는 말 때문인지 무례한 행동 때문인지 딱히 고마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함께 살 때도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잠겨있는 방문을 쾅쾅 두드려서 나를 불렀고, 나는 무례하게 그러지 말라고 종종 나무라곤 했었다. 당시에 늘 입이 아프도록 말했는데도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잠이 깬 마당이기도 하고 애써 주문한 치킨을 식게 놔두는 것도 찜찜해서 문을 열고 주방으로 갔다. 치킨 상자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그리 많지 않은 윙과 봉 부위의 조합이었다. 어떤 고기든 뼈에 붙은 게 맛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좋아하지만, 나는 바삭바삭하지도 않고 못 먹는 뼈가 더 많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메뉴였다. 말로는 나를 위해서 샀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산 것이 분명했다.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할 것이지. 필요하다고 한 크릴오일을 내가 기억해서 사 온 걸 보고 조금이라도 배운 게 없는 걸까.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큰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려고 하는 성격이 반영돼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좀 전에 아버지가 문을 두드렸을 때보다 더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았다.   

 

  김이 피어오르는 치킨을 앞에 두고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문득 과거에 엄마와 누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잘못된 투자를 한 이후에 집을 나가버린 엄마와 수능 이후에 유사 종교에 빠져버린 누나가 모두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각각의 시기에 자신의 성격을 죽이고 좀 더 이해심을 발휘했더라면 가족이 와해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여성인 그들이 바랐던 것은 공감과 위로 같은 감정적인 영역의 것이었을 테니까. 적어도 일하느라 힘들다는 이유로 주말에 가족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무관심한 태도나 밤늦게까지 보험일 하느라 수고했다는 말 대신 여편네가 집안일은 안 하고 허구한 날 밤늦게 들어온다는 식의 취중 막말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물며 비싼 돈으로 특목고에 보내놨더니 수능을 그렇게 망쳤냐고 하면서 술에 취해 화를 내는 행동이나 잘못된 투자로 집 담보금을 날려 먹은 일 때문에 허구한 날 비난의 말과 욕설을 들어야만 하는 집안 환경은 더더욱 아니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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