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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n 05. 2021

가까스로 고맙다고 한 말(3)

"시켜줘서 고맙디. 치킨 잘 먹을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 방에 있던 아버지가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왜 안 먹고 있노."


  나는 얼버무리듯이 어어, 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부정적인 과거를 생각하면서 아버지에게도 조금은 사나운 마음을 가진 것이 불편해서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버지는 넓은 그릇을 하나 가져와서 거기다가 밥을 한가득 퍼 담았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김치와 나물을 꺼내 밥 위에 얹은 뒤 마지막으로 치킨 세 조각을 그 위에 올렸다.


  "니 다 묵으라, 내는 이것만 먹으면 된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음식들이 담긴 그릇을 티비가 켜진 방으로 다시 들고 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심코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한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시선은 티비에 둔 채로 이내 밥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할 때까지도 나는 아버지에게 붙박인듯이 머문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단지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아버지가 한 번씩 집에 오는 나나 같이 사는 누나와 함께 밥을 먹지 않은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왜 불편하게 느끼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면서 적어도 하나만큼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아버지에 대해 다소 편향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과거에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고함만 내지르는 나쁜 사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태도와 무관하게 평생 묵묵히 일만 하면서 같은 자리에서 늘 가정을 지킨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가족이라면 다 참고 이해해야 한다는 가족주의에 빠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잘못한 것을 잊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자식에게 준 것을 상쇄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유지한 물리적인 거처와 남자가 쉽게 하기 힘든 장보기와 요리를 십수 년 동안 해서 차린 밥상들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제공 받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그런 것들을 왜 조금도 감안하지 못했던 걸까. 왜 별것 아닌 일로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일까. 오래전에 아버지를 미워하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래봤자 도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만 더 괴로워질 텐데.


  그러다가 내 시선은 무심코 눈앞에 있는 치킨으로 향했다. 그런 주제에 관해서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자각도 없진 않았다. 역시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우울한 생각을 길게 하는 것도 청승맞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치킨 한 조각을 집어서 베어 물었다. 원래 좋아하는 메뉴가 아닌 데다가 이미 다 식어버린 바람에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닭의 뼈'라는 이미지가 연상됐기 때문인지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아쉬울 것 같은 '계륵'처럼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꼭 누구처럼.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맛이 없다고 하더라도 애써 치킨을 시켜준 노력은 잊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안방을 향해서 조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시켜줘서 고맙디. 치킨 잘 먹을게."


  말과 다르게 실제로 그리 고마운 마음이 들진 않았다. 막상 내뱉고 나니 그것은 왠지 아버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아버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저편에서는 무뚝뚝한 어조로 '어'라고 짧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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