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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l 19. 2021

아이들과 함께 이별연습(1)

나는 왜 그곳에 다시 찾아가는 걸 주저한 걸까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그해에 근무했던 지역아동센터에 다시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정확히는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부터 한 학기 일정을 모두 마무리할 때까지였으므로 4개월이 꼬박 넘는 시간이었다. 학업에 신경 쓰는 동안에는 다른 일들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서 미룰 때가 많았기 때문에 경과된 시간을 자각한 것도 같은 날의 일이었다. 아마 컴퓨터실에서 마지막 과제를 마무리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이제 더는 주저해서도 안 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날 방에 돌아오자마자 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조금 설핏한 느낌이 들어 손으로 횟수를 세어보았다. 시간을 이렇게 지체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서는 머지않아 다시 가야 한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입을 한 탓에 남들보다 전공과목을 두세 개 더 듣고 공모전 준비까지 하느라 바빴다고 해도 좀 심했다 싶었다. 내가 사는 고시원에서 버스로 고작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아무래도 학업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윽고 연결된 전화를 받았다.


  센터장은 내가 처음 입을 떼자마자 누구인지 단번에 알고는 반가워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다른 지역 사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학업 때문에 바빴다는 이유를 대면서 죄송하다고 하자 센터장은 괜찮다고 다시 연락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선량한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찾다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로 용건을 밝혔다. 무작정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겠다고 하면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왠지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그 이유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내 부담을 덜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센터장은 언제든 상관없다고 하다가 내일 이 시간에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


 


  전날에 약속한 시간에 맞춰 찾아가기 위해 방에서 나온 것은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미리 사둔 초코파이를 양손에 나눠 들고 인근에 있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막상 정류장 앞에 가서 보면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버스 번호는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검색해서 찾아보니 타야할 버스는 10분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그사이에 가만히 텅 빈 도로를 바라보았다. 문득 잊고 있었던 4개월쯤 전의 기억이 저절로 복귀되었다.


  그러니까 그때 센터에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억이. 버스를 타기 위해 내달리는 동안에도 볼을 타고 계속 흘러내리던 눈물이 좀처럼 그치질 않아서 버스 한구석에 앉아서도 계속 숨죽여 울었던 내 모습이. 그 이유가 다시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왜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졌던 슬픔의 순간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그동안 센터에 가는 것을 지체하게 만든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때 나는 훌쩍이던 와중에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근무가 종료된 시점에서 아이들과의 인연도 사실상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살면서 지금까지 수없이 경험한 이별에서 배운 것처럼 억지로 이으려고 해도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만약 시간이 지나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전의 좋았던 감정을 되살려보기 위해 애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마 그렇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쭉 알게 모르게 마음의 부담을 느끼면서 자꾸 지체했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단지 그런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좀 바보 같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랬던 것이 과거에 추상적으로 상상만 했던 때와 다르게 현재 직접 찾아가는 순간의 내 마음은 의외로 무겁지 않았다. 그때 느꼈던 슬픔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전에 편지글에 적었던 다음에 꼭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실천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그때는 과도한 슬픔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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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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