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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Jul 19. 2021

아이들과 함께 이별연습(2)

"이 선생님 누군지 알아?"

버스에서 내린 뒤 초등학교 담장과 맞닿은 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날에 청승맞게 울면서 내달린 바로 그 길이었다. 겨울과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이 돼서 다시 찾아와보니 담장 위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양옆에 주차된 차들이 빛을 부윰하게 반사한 탓에 눈이 시렸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는 사실이 더더욱 실감되었다.

역시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실망하려나. 새로운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라 혹시 다시 찾아온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건 아닐까. 이미 몇 차례 답을 내린 의문이 다시 한번 떠오른 것은 주택가에 있는 센터 앞에 다다라서였다. 나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속으로 대답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동안 학업과 글쓰기에 열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라고, 그러니 아이들의 반응이 어떻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게 읊조리고 나서야 현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1층 유리문을 통해 몇몇 아이들의 옆얼굴이 보이자 마음속이 더욱 울렁거렸다. 신발장의 슬리퍼로 갈아 신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손에 들고 있던 초코파이 봉지를 먼저 문밖에 놓아두었다. 대단하지도 않은 선물을 직접 건네주고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빈손으로 문 앞에 선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센터장과 생활지도사가 곧장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사무실 내의 도서이용공간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아이들도 곧장 나를 알아보았다. 큰소리로 ‘이상해씨 쌤이다’ 하고 말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조금도 안 변하셨네요.”

  생활지도사의 말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이들도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가까이 다가온 세화라는 아이에게 ‘아니네, 키가 많이 컸구나’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아직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마음속의 울렁임을 감추기 위해 부러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반갑다고 한 내 말에 세화는 이제 쌤이랑 키 차이 별로 안 나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그러고는 까치발을 들고 나를 올려다봤다. 옆에 있던 지승이라는 아이는 왜 이제 왔냐고 하면서 나를 덥석 안았다. 나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생활지도사는 ‘함부로 안지 않기로 했잖아’라고 말하며 제지했다. 나는 지승이한테도 못 보던 사이에 키가 많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동원이라는 아이가 물어보았다.


  “쌤, 제 이름은 뭐게요?”


  나는 동원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안녕’ 하고 말했다. 그것을 지켜본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자기 이름이 뭔지 물어보며 맞혀보라고 했다. 나는 차례로 이름을 말하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해 주었다.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좋아하기보다는 제법이라는 듯이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고뭉치 아이들이 이름을 물어볼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정말 맞아떨어진 것을 알고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혹시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보자마자 이름을 바로 말해준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서 자기 전에 한 명씩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외운 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분명 버벅대거나 당황했을 것이다.


  “이 선생님 누군지 알아?”


  뒤에 있던 작은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유독 키가 작은 그 아이는 센터에 새로 들어온 일학년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조금 따끔한 기분을 느꼈다.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일학년들을 비롯한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 만큼 자리를 비워주듯이 센터를 나간 아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왜 그걸 몰랐을까. 나간 아이들을 앞으로 영영 볼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이제껏 훈훈하게 데워졌던 마음에 찬물이 씌워진 듯했다.


  “겨울방학에 같이 눈싸움했던 쌤이잖아.”


  “저 쌤이 우리한테 삽으로 눈 뿌린 거 기억 안 나?”


  다른 아이들은 킥킥거리면서 웃었고, 나는 좀처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센터장과 생활지도사가 듣는 데서 그 민망한 일화를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두 아이가 함께한 일들 중 가장 자극적이었던 일화로 나와의 관계를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대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기억하는 추억이 내가 기억하는 추억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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