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얘기를 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내가 쓴 글을 읽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난 김에 나는 현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전에 센터장에게 아이들도 카페에 다 들어갈 줄 안다고 했던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아직 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남아 있었다.
“야, 너네들 혹시 우리 카페 들어가서 편지 읽어 봤어?”
현호는 손에 쥐고 있던 색종이를 내려놓은 채 갑자기 주위에 있던 이삼 학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를 따라 색종이를 가지고 놀고 있던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 카페라고?’ ‘무슨 편지?’라고 물어보았다. 현호는 스마트폰을 꺼낸 뒤 카페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카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하며 신기해했다. 나는 센터장과 생활지도사를 비롯한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편지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은 것을 알고 실망했다. 그래도 이내 현호가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뒤늦게 편지 내용을 읽어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평소와 다르게 이렇게 글로 인사를 전하려니 쑥스러운 마음이 듭니다만, 미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글을 남깁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저는 12월 말부터 2월이 다 끝날 때까지 보람아동센터에서 근무했습니다. 어찌 보면 짧으면서도 긴,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학교 운동장에 가서 함께 술래잡기와 축구도 했고, 1년에 딱 한 번뿐인 상점 시장에서 선물을 사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읽는 동안 아이들은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평소에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던 걸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었다. 도입부를 지나 덕분에 어릴 적에 길러준 부모님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몇 차례 화를 냈던 일들을 후회한다는 진지한 내용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과연 제대로 알아듣고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 ‘그동안 괜히 숨겨왔습니다만, 제 이름은 이상해씨가 아니라 이성우입니다.’라는 추신까지 다 읽었을 때 한 아이는 소감이라도 전하듯이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성우 선생님인 줄 처음 알았어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이제껏 이름이 ‘이상해’나 ‘이상해씨’인 줄 알았다고 말하며 덩달아 웃었다. 나는 어색하게 따라 웃다가 그때 내가 안 가르쳐준 줄 몰랐다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의도야 어떻든 한때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했던 게 그리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찔리는 마음도 들었다.
아이들이 내 이름을 다르게 알고 있었던 이유는 예전에 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하루는 어떤 대화 중에 세화가 내게 ‘이상우? 쌤 아니에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장난스럽게 ‘아닌데, 이상해씨(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풀 포켓몬)인데?’라고 대꾸했다. 세화는 곧장 ‘야, 저 선생님 이름 이상해씨래’라고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 굳이 사실을 바로 잡지 않았다. 그때는 순순히 이름을 알려주면 철없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마음대로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다시 돌아보면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에게 수동적인 반응만 해주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이 근무시간을 덜 괴롭게 보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눈싸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놀이들을 나서서 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은 아이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인지, 혹시 공부 시간 외에 다른 일로 친분을 쌓게 된다면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듣고 더 떠드는 것은 아닌지 혼자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내 이름이 각인 되는 것도 좀 부담스럽게 느꼈던 것 같다. 이름 없이 이 쌤, 저 쌤이 아니라 계속 ‘이상해씨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름 숨기기는 효과가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