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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Aug 21. 2021

못 쓴 글도 아름답다(1)

모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셨다는 사실인 것 같았다.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그해 여름에 네 분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자서전출판 사업 덕분이었다. 정확히 '동구 어르신 생애출판'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이 사업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자서전 쓰기 멘토였다. 20대 중반의 나이에는 누구나 그렇듯 자서전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나 또한 어르신들을 가르칠 자격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배워왔다는 나름의 자부심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일을 제안받았을 때도 자서전을 소설보다 쓰기 쉬운 기록물 정도로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게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학과의 원우회장 선배였다. 전화로 얘기를 들어보니 구청에서 자금을 대고, 지역 내에 있는 30명가량의 어르신들을 모집하여 진행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출판사업인 듯했다. 7주 동안 어르신들이 쓴 글에 대해 멘토링을 하고 이후에 퇴고와 맞춤법 교정까지 해주는 조건으로 100만 원이나 받는 모양이었다. 웬만한 데서는 밥벌이하기 힘든 글쓰기 전공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다는 것도, 우리 세대는 잘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속 깊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 나는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선배에게 연락을 받고 보름쯤 지나서였다. 그 무렵에는 대학원생 한 명당 네 명의 어르신으로 구성된 조가 사업을 의뢰한 담당자에 의해 짜여졌고, 대학원생들도 몇 차례 회의를 통해 커리큘럼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날 구청 내의 넓은 프로그램실로 들어간 나와 다른 대학원생들은 어르신들이 모인 테이블로 각자 찾아갔다. 나와 어르신들은 그때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나이나 타자 가능 유무, 학력 등을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그런 사전 정보들은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 순간에 중요한 것은 단지 내 앞에 있는 어르신들이 모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셨다는 사실인 것 같았다. 네 분 모두 세상사의 사사로운 관심사에 무심한 듯 머리 전체가 혹은 채 염색하지 않은 머리 뿌리가 하얗게 새어 있었다.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는 가장 나이가 많으신 두 분께서 귀가 어두워서 큰 소리로 소리치듯 말해야만 겨우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개별적으로 얘기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세 분께서 배우자들과 사별하셨다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제 보니 고인이 된 배우자들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나이에 남은 힘을 자서전을 쓰는 데 쏟으려고 오신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힘은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이 쉽게 떠올려볼 수 있는 못 먹어본 맛있는 음식이나 못 가본 여행지, 혹은 체념하기를 위해 쓰이지 않은 것이다. 네 분께서 기어이 내놓기로 마음먹은 이 소중한 시간이 허투루 쓰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진지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잡담을 나누고 있던 어머님과 아버님의 주의를 집중시킨 뒤 다음 주까지 해야 할 글쓰기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과제는 '부모로서의 나' 혹은 '자식으로서의 나'에 대해 공책 네 바닥 안팎으로 써오는 것이었다. 과제인 동시에 개인 자서전에도 수록되어야만 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네 분 모두 납득할만한 보편적인 주제로 고른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었지만, 다들 선뜻 해오겠다는 의사를 내게 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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