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결국 어르신들의 글을 자세히 읽은 건 그날 저녁에 자취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였다. 별뜻 없이 그저 가장 호기심이 갔던 무리한 요구 어머님의 전쟁 이야기부터 읽었다. '국민학교'나 '대동아전쟁', '히사시까미' 같은 일제식 표현들이 처음에는 조금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꼭 부정적으로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쓰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까지 포함하여 인생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절의 일들을 꾸밈없이 날것 그대로 적으려고 애쓴 노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랜 피난 생활 끝에 고향 마을에 다시 돌아왔을 때 기와집은 물론이고 베개 속에 넣어둔 쌈짓돈마저 홀라당 다 타버렸다는 얘기며 전쟁 통에 시체를 많이 본 탓에 염세자살한 친구의 얘기가 당시의 어머니의 고통과 무관하게 내게는 진정성 있고 절절하게 다가와서 좋았다.
그 뒤로 다른 어르신들의 글들도 차례 차례 읽었는데, 무리한 요구 어머니 못지 않게 다들 꾸밈 없이 잘 써주셔서 번번이 놀랐다. 오래 전 갓 태어난 자신을 헛간에다 방치해 죽이려 했다는 가난한 부모에 대해서 원망하는 투 없이 차분하게 써내려간 열정 아버님의 글. 일본군에게 붙잡혀 가지 않기 위해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외딴 섬으로 시집을 갔다는 병문안 어머님의 불우한 유년의 사연. 각자 평생 가슴 속에 묵혀 놓은 사연의 유일한 증인으로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증언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러 오시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개인 면담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사연은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을 것이라고 말한 가부장적인 아버님의 글도 그 빛나는 업적의 내용 이면에 가장으로서의 고된 책임감이 있다는 걸 유추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분명 두서 없이 장면이 바뀌고 문장 연결도 매끄럽지 않은 기본기 부족한 글들이었지만, 글쓰기 문법과 무관하게 내게는 모두 의미로 충만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평소에 읽고 쓰는 소설과는 다른 자서전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느낀 것 같았다.
왜 그런가 하고 잠시 생각해보니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글 밖에서 실제로 살아 숨쉬는 어르신들을 계속 의식하며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글을 통해 살아온 인생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나니 어르신들 개개인과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어르신들이 과거에 힘들게 살아온 것을 알고 연민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오늘 오전에 멘토링이 잘 안 된 건 어르신들의 과도한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완전히 다른 세월을 보내오신 어르신들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단지 글을 좀 읽었다고 해서 함부로 알았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자서전 덕분에 어르신들에 대해서 머리가 아닌 직감이나 가슴으로 알게 된 따뜻한 이해가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그건 분명 가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소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서전만의 이해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