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여름 방학 동안 유아교육진흥원에서 함께 일했던 남 선생님(남씨 성을 가진)과 처음으로 사담을 나누었던 그 짧은 순간을 기억한다.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오전의 일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빳빳한 빗자루를 들고 현관 앞에서부터 본관 둘레를 따라 가로로 길게 늘어진 고무 카펫 위를 쓸고 있었다. 마당의 큰 풀장에서 물놀이를 마치고 맨발로 걸어 나오는 유아들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꼼꼼하게 쓰는 게 중요했다. 평소에 그 일을 하는 나와 대학생 동료들은 차라리 담장을 따라 늘어선 소나무들을 다 베어 버리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제법 성가신 일이었다.
우리가 그 일을 맡은 이유는 계약직 선생님들의 지시 때문이었다. 유아교육진흥원에서 우리들보다 계급이 높은 선생님들은 대체로 일을 시키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다. 다만 남 선생님만은 예외였다. 내가 아는 한 남 선생님은 하루도 빠짐 없이 그일을 먼저 나서서 하셨다.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보도블럭 사이에 핀 잡초를 곡괭이로 제거하거나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을 야트막한 꽃밭 언덕에 주는 일을 시키면서도 시간이 나는 한에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셨다. 무거운 소방용 호스를 안아서 드느라 옷이 더러워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왜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게 나서서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하시는 걸까. 왠지 남에게 일 시키기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는 짐작을 우리끼리 하곤 했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미안해서라도 게으름은 피울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침에 근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휴게실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타 마시면서 졸음을 달래고, 선크림도 꼼꼼하게 바르고 싶었지만, 남 선생님 때문에 그러기가 힘들었다.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내 경우에는 혹시라도 실망시켜드릴까봐 더 빨리 나오게 되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청소도구를 챙겨 들고 정시에 현관 앞에 나왔다. 남 선생님은 일찌감치 한쪽 끝에서부터 카펫 위를 쓸고 계셨다. 중앙 현관에서부터 일을 거들기 시작한 나는 그날 따라 세삼스럽게 남 선생님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질끈 묶어 올린 포니테일 머리에 평균보다 작은 체구. 작지만 왠지 참 듬직한 뒷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해야만 했던 카펫 쓸기가 더욱 고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성우는 오늘이 마지막이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마침 그 순간에 남 선생님이 내 쪽으로 돌아서서 말을 걸어왔다.
"네,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어요. 늘 솔선수범 해주시는 모습 보고 저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마지막'이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져서인지 그동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말들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해준 건 없지만 너무 고맙네."
남 선생님은 쑥스러워하는 듯 밝은 표정을 짓다가 혹시 다음에도 다른 애들이랑 일하러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청을 다시 해봐야하긴 한데, 저도 여기로 또 걸렸으면 좋겠어요."
"더운 날에 힘든 일만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았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재차 말했다.
그 뒤로 남 선생님은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내 대답을 듣고 나서는 글 쓰는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그래서 쉬는 시간에 책을 보고 있었구나, 라고 말하며 납득하셨다. 역시 사람은 대화를 나눠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라고 하다가 그동안 바쁘게 일만 하다가 마지막이 되니까 이런 얘기도 다 해본다고 말하고는 작게 웃어 보였다.
그 말을 듣고나서야 나는 남 선생님과 근무시간에 사담을 나누는 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 선생님은 일이 바빠서였다고 했지만,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남 선생님은 겉보기에 일의 성과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을 엄격하게 시키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신경써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