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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Nov 14. 2021

스무살의 은둔형 외톨이와 화해할 수 있을까(4)

  독서실에서 일한 지 9개월쯤 지난 무렵이었을 것이다. 평소처럼 카운터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그날따라 눈앞의 빛이 번져 보이는 것 같아 당황했다.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만 떠보니 시야의 절반 정도가 희끄무레하게 가려져 있어서 큰일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눈은 과거에 학교폭력을 당한 탓에 망막이 찢어져서 수술한 눈이었다. 얼핏 수술 이후에 의사에게서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작년 겨울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안과에 곧장 찾아가서 갖가지 검사를 받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난 의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의사는 한 달에 한 번씩 예정된 정기검진을 오랫동안 받지 않은 탓에 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망막박리가 재발하게 되었다며 나를 질책했다. 볼 때마다 늘 초연하고 냉철하기만 했던 의사가 오죽 답답했으면 언성을 높였겠는가 싶어서 나는 더욱 작고 초라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은 우리 엄마가 다단계에 빠져 있는 바람에 알림 메시지가 온 것을 보고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나는 나대로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차마 비싼 돈과 시간 들여서 정기 검진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변명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떤 말도 이제 와서는 의미가 없었다.


  


  눈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잡아야만 했던 재수술 계획은 집 근처의 대학병원에서 논의되어 이틀 후로 최종 결정되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당장 수술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마음이 탐탁지 않은 것을 무릅쓰고 엄마와 아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과거에 보험 설계사로 일했던 엄마가 내게 들어 놓았던 보험 덕분에 막대한 수술비는 아낄 수 있었고, 나는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수술 전날에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이제 더는 독서실에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수술을 받고 안정을 취한 이후에 나와도 괜찮다고 설득했지만, 나는 이미 수술의 성공 여부나 호전 여부에 상관없이 더 이상 다니지 말아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동안 검진을 받으러 가지 못한 게 독서실 아르바이트 때문은 아니지만, 삶의 여유를 빼앗은 데 조금은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9개월도 넘게 일한 아르바이트를 관두게 된 마당에 아깝거나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당일에 수술은 부분 마취를 한 이후에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안대를 낀 채로 병실에 누워 있는 사이에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뒤로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한 번씩 불려가서 첨단 기계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이틀째 되는 날에 이제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듣게 되었다.


  단안 실명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는데도 막상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안대를 풀었을 때 수술하기 전처럼 오른쪽 눈의 절반 정도가 희끄무레하게 보여서 두 눈으로 책을 읽을 때마다 글씨가 겹쳐 보이는 데다 초점 없이 눈에 힘을 빼면 약간 사시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막막함을 느끼긴 했지만, 오직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은 수술 이후에 병실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여태껏 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나 안 가도 괜찮을 거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넘겨짚었던 해이해진 정신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보상도 없이 자꾸 연쇄적으로 삶의 질이 나빠지기만 하는 현실과 제대로 된 현실 파악을 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희망에 얽매인 상태에 대해서 나는 자꾸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내내 모른 척했던 문제를 뒤늦게 인정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태껏 써왔던 소설을 끝까지 다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만 여러 방면으로 고심해 봐도 애초에 가장 많은 기대를 걸었던 소설의 결말 부분이 현실 세상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허구인 소설이라고 해도 얼굴에 화상을 입은 여자아이를 한때 일진이었던 남자아이가 사랑하고, 여자아이는 따돌림과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당당히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결말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그건 그냥 나만의 세계에서 지어낸 바람이나 판타지에 불과한 것 같았다. 꼭 그동안 청소년 문학상에 당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실현 가능하다고 믿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여태껏 해왔던 글쓰기가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수치심을 느꼈다. 1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 동안 이룬 것은 하나도 없고, 잃은 것만 많은 것 같아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내내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때 느꼈던 허무함과 상실감을 좀처럼 견딜 수 없어서 나는 계속 괴로움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서 한 차례의 검진을 또 받고, 이듬해에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로 하향 지원한 지방 국립대 문예창작과에 다니게 된 뒤에도 왠지 또래들보다 뒤처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합리화를 잘하는 습관 때문에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망막박리가 재발한 덕분에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히키코모리처럼 살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 년 동안만 은둔형 외톨이로 산 게 어디냐, 거기에 등장하는 히키코모리들은 10년, 20년 동안 갇혀 지내지 않았냐. 처음에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불쌍한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위안을 얻으려는 삶의 태도는 살면서 그다지 습득하고 싶지 않은 태도가 분명했다. 그런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면 역으로 나보다 잘난 사람들 앞에서는 저절로 처지를 비교하면서 괴로워하게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지난날의 못난 나와 화해하는 방법은 없을까. 역시 기억하지 않고 애써 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런 사소한 질문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서 가끔 여전히 20살의 인생을 공백으로 놔둔 것 같은, 왠지 누구에게나 소중한 20살의 시간을 나만은 잃어버린 것 같은 씁쓸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아직도 본가 근처에 있는 독서실 앞을 지나갈 때면 그 암울했던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 조금은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이 아픔을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는 게 싫어서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기 한데, 어쩌면 이 글을 쓴 많은 이유 중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어딘 가에서 '이야기 치료'라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 그때의 불운했던 상황과 억눌린 감정들을 글로 표출하고,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면 조금이라도 좋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이런 글을 하나 쓴다고 해서 당장 과거의 못난 나와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삶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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