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달라진 모습을 찾아서 관찰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약속 돼 있던 네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처음 내가 방문했을 때 서운함을 내비치지 않았던 아이들은 내가 언제 가는지 묻지도 않더니, 이제 정말 갈 때가 되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 생활지도사와 센터장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동안에도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았다. 나보다는 오후 시간 대에 찾아온 남녀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문제 풀이 이후에 집에서 가져온 머리끈으로 여자 아이들의 머리를 손수 땋아주는 여자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요구하는 족족 포켓몬 캐릭터 그림을 그려주는 남자 선생님은 누가 봐도 자상해보였기 때문에 믿음이 갔다. 그래서인지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아이들을 뒤로 한 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귀가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왠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데도 센터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운영 되고, 아이들 또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날이 성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오늘의 방문으로 알게 된 그 사실이 뜻밖의 선물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에 느껴지는 좋은 감정과는 무관하게 한편으로 왜 좋은지 생각해보다가 예전에 강연에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정확히는 대학교 사회학 강연에서 '구조'에 대해 교수님이 설명했던 말이었다. 교수님은 자신이 강연을 하러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 자리가 다른 훌륭한 교수님에 의해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켜 그것을 '사회구조'니 '구조주의'니 뭐니 할 때의 그 '구조'라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개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언급하면서 구조의 힘이 강할수록 개인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질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당시에 강연을 듣고 있던 나는 그 순간에 '구조'라는 게 마냥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구조의 유지를 위해 언제든 대체 될 수 있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서글픈 기분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게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G지역아동센터의 구조가 견고했기 때문에 내가 예나 지금이나 마음 놓고 떠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만약 G지역아동센터의 구조가 나 하나 빠졌다고 해서 흔들릴 정도로 약했더라면, 다른 일을 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나는 아이들이 잘 자란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흐뭇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G지역아동센터'라는 구체적인 장소, 혹은 나를 포함해 여태껏 오고 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무형의 구조가 새삼 잘 축조된 조형물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