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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Aug 14. 2024

사랑에 묻고 사랑이 답하다 - 넷

웹툰 좋아하는구나 / 살기 위한 간절함으로 처음으로 요청하다

말을 잘하는 줄 스스로 착각했지만 대화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아픈 걸 알고 있으니 참고 기다릴 거라고 너무나 당연하듯이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면서

마음 아파할 여유도 없었던 것은 그보다 더 힘들었던 사랑이의 목소리가 닿았기 때문이다. 

9살에 헤어져 벌써 4년째, 사춘기가 될 때까지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아비의 심정보다 그 시간을

온전히 다 겪어야 했던 어린 딸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재는 늘 자기편이 되어주던 지지자의 잃음과 동시에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던 열렬한 팬이 사라진 것을 경험해야 했고 당연히 있을 거라고 했던

가족의 한 부분이 사라진 상실감이었을 것이다. 

간신히 웹툰이라는 소재로 사랑이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준

존재가 웹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 날 사랑이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기쁜 마음에 서둘러서 통화연결 버튼을 누르고 '사랑아, 무슨 일이야' 기대반 걱정반으로 받았다.

아빠,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그래, 얼마든지 말을 해도 되지~'

아빠, 제가 좋아하는 웹툰이 있는데요. 원작 소설책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읽고 싶어요. 

아빠로서 웹툰만도 못한 존재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입장에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목부터 악마들이 현대에서 활약하는 그런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여졌다. 

'사랑아, 소설은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거 알지? 악마가 좋은 역할로 나와도..'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랑이는 당연하듯이 말을 했다.

아빠! 당연하죠. 그건 그냥 소설에서 허구로 짠 스토리잖아요. 저는 스토리만 보는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사랑이를 어리게만 생각해서 모를 거라고 짐작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의외로 사랑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웬만큼 나이 들어야 부모의 대한 위치와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일단은 사춘기시절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내가 아님을 받아들이고 웹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가 꼰대가 된 내겐 그런저런 이야기일지라도 사랑이에게 버티게 해주는 역할이었다니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웹툰의 원작인 웹소설을 구해달라는 사랑이의 요청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아빠는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아직 간직하고 있으니깐. 

하지만 그것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중고서점과 온라인서점을 계속 찾아보았는데 여러 가지 사이트와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해서

구하기 시작했다. 

사랑이와 대화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우선 사랑이가 요청한 

책을 찾기 위해서 중고사이트, 헌책방, 서점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일주일 넘게 찾아서 2~7권을 구매를 

했는데 문제는 1권을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웃돈을 주고라도 구매하고 싶어서 사이트에 글을 올렸지만 2주가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 달 넘도록 1권을 구하기 위한 온갖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찾았지만 더 이상 출간이 안 되는 작품이고 2015년 발행 이후 

품절로 2018년까지가 마지막 판매였던 것 같다. 

마니아층이 확실해서 그런지 좀처럼 중고시장에 1권은 찾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날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서 작가님 관련 기사와 블로그 등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추적(?) 하던 중에 작가님이 쓴 끌으로 추정되는 것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아이디로 이메일을 보내보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이 없어서 아마 작가님이 아니겠구나 생각을 하고 여전히 웹서치를 하면서

찾고 있었는데 알림이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클릭해 보았는데 작가님의 답장이 맞았다.

해외에 머물고 있어서 답변이 늦었다면서 본인에게 초판본이 있으니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급하면 지인을 통해서 바로 보내주고 아니면 한 달 정도 후에 한국에 들어가는데 그때 직접

보내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메일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정말 작가님의 이메일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랑이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할지 물어봤다. 

아빠, 감사해요. 기다릴게요. 작가님이 보내주신다니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떨어져 지낸 지 3년 만에 사랑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부모는 자식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함께 할 때 그 기분은 정말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들에게 장난스레 말하는 것이 있는데. 

너희들은 태어나 아빠를 향해 웃어준 그 한 번으로 평생을 다 해줘도 아깝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 같다고

그러나 살다 보면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서 제재하고 강요도 하게 되고 그게 결국은 행복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게 자녀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부모가 원하는 건지.. 

본인도 그 시절을 겪어놓고 잊어버리는 건지 욕심인 건지 똑같은 잘못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자유와 선택은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에서 마음껏 해라

이 말은 살아오면서 지침서와 같아서 정말 자유롭게 살아왔다. 

본인은 그래놓고 정작 자녀들은 엄격하게 그것이 예의 있는 교육이라면서 억압했던 것 같다.

사랑이가 좋아하는 그 책의 작가님의 책에 나온 글을 빌려서 사랑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작가의 말
상상은 어려서부터 지금껏 제가 가장 많이 해 온 것 중 하나입니다. 그 꿈이 이제는 캔버스의 그림이 아닌 종이 위의 글이 되었지만요. 한평생 미술을 해 오면서도 틈틈이 글을 놓지 않고 써 왔던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이거란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더 욕심나 이곳으로 몸을 완전히 튼 상태지만 아쉬움이나 미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동안 정말 기다려 왔던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씩 책이 나오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기분입니다. 그중에서도 『악마라고 불러다오』는 제가 가장 즐겁게 쓰고, 마음껏 상상하고 원 없이 펼쳐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긴 편수만큼이나 가장 빨리 완결 짓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아직 써야 할 얘기가 많게 느껴진 소설이었습니다. 독자님들의 애정이 없었더라면 장편이 될 수 없었을 텐데 그 애정이 더해져 이제 책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독자님들에게 한 장의 편지 같은 책이 되길 바랍니다. 언제라도 꺼내 볼 때마다 읽었던 순간을 회상할 수 있는 소설로 기억되길. 앞으로도 다른 이야기로 새로운 만남을 열고 그곳에서 색이 다른 감정을 선사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아, 너도 참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버티는 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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