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 살기 위해서 집착한 것
사랑이에 대한 복잡한 심정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더욱 강해진 것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아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작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거라 생각했던 아이의 모든 것에 힘들어하는 모습은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왔다는 충격보다도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난 아빠다.
무너질 수 없다. 그리고 가족들도 서로서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을 닫아버린 사랑이를 알아가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었고 이야기를 어디서 풀어야 할지
정말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도 안 가려고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줄 알았던 아이는
나름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고 번아웃이 되어 버린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랑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다시 처음부터 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질문으로는 좀처럼 대답조차 안 하기에 답답함만 쌓여갔는데
집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하는 게 핸드폰을 안 보던 아이가 너무 집착하면서 학교 안 가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서 강제로 못하게 하니깐.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을 '핸드폰 중독'이라고 너무나 뻔한 결론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니 도저히 풀 방법이 없고 계속 악화만 되어가고 가족관계마저 위태롭게 되고
다른 가족들도 다 지쳐 갔다.
그제야 사랑이에게 본질적인 궁금증이 생겨났다.
질문과 궁금증은 결이 다른 것 같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궁금증은 애초에 답에 목적보다는 그 의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게 더 강한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건데? 꿈이 뭔데?"라는 추궁이 아니라
지금 사랑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아빠는 사실 사랑이를 내 딸이니깐 당연히 아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어.
그래서 알아가고 싶어.
왜 이제야 내가 울고 힘들어하니깐. 마음 편하고 싶어서 알고 싶은 거잖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이번에 더 느꼈어. 그래서 그래.
혹시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
학교 가거나 말을 잘 들으라는 게 아니야. 이미 사랑이도 다 아니깐. 힘들어하는 거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사랑이도 사랑이 마음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
몇 번의 시도와 수십 분의 침묵 속에서 사랑이가 말을 시작했다.
나도 잘 몰라. 그냥 모르겠어. 그래서 나도 알고 싶어.
아 그래? 사랑이고 답답했구나. 알고 싶겠구나. 근데 아빠도 그 답은 줄 수 없지만
만약 그 답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볼 생각은 있어?
'응' 나도 알고 싶어. 답답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 지금 사랑이가 가장 편한 시간은 언제인 것 같아.
핸드폰으로 웹툰을 볼 때..
아 결국 내 머릿속에는 중독인가.. 하는 너무 뻔한 결론으로 다시 달려가고 있었는데
간신히 떨쳐버리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사랑이의 시선으로 보기로 했다.
아빠도 비슷하게 그런 것 같아. 예전에 게임에 빠져서 그런 것도 아빠도 그랬어.
사랑이는 제법 놀란 반응이었다.
본인에게는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아빠도 그런 적이 있었다니..라는 느낌이었나 보다.
핸드폰으로 주로 뭘 보는데?
이것저것~
그런 사랑이에게 아빠가 도와주고 싶은데 사랑이에게 필요한 게 뭐야?
사실 핸드폰 많이 하면 안 좋은 거 아는데.. 쿠키가 필요해
쿠키?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면 사줄 텐데..
(이때 난 네이버 쿠키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런 게 아니고 지금 보는 웹툰을 빨리 보고 싶은데 그러면 쿠키가 필요해.
(나중에 쿠키가 무엇이고 이게 어떻게 사용되는지 공부하게 되면서 지금은 쿠키로 칭찬을 표현해 준다)
그렇게 쿠키에 대해서 무조건 지급하는 것도 학교 가는 대가로 지급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을까 고민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웹툰을 보는지에 대해서 이제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알려고 하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랑이가 사용하는 아이디는 내 아이디. 바로 이것이니깐.
내가 방법을 찾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이지..
그렇게 웹툰 '악마라고 불러다오'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에서부터 거리감이 있었다. 필시 안 좋은 내용일 거라고 아 그래서 사랑이가 저렇게
삐뚤어지고 있는 건가. 1970~80년대나 할법한 사상검열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나도 꼰대구나..
그래서 일단 알아보기로 해서 나도 그 웹툰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사실 내용보다는 작품을 통해서 사랑이와 대화가 이어지고
결국 내가 어릴 때 가지게 된 상상력을 사랑이는 이 웹툰을 통해서 가지고 있었고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사랑이는 제법 구별할 줄 알았다.
웹툰이 허구라는 것도 그 내용에서 배제해야 하는 내용도..
괜한 나의 걱정은 포인트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사랑이는 그 작품을 통해서 인물관계라든지 심리적인 변화 분석, 그림, 그리고 최종 목표는
원작. 소설에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깐. 단순하게 생각되는 핸드폰 중독, 웹툰 중독에 빠져서 변한 게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 잘 모르는 자신의 답답함 속에서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열정을 쏟을 방향을
길라잡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어디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유일하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그림이었어.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거야.
그때 알게 되었다.
사랑이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악마라고 불러다오'라는 작품은 우리 부녀에게는
원본에 다가가고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설책을 함께 찾아가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