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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Jul 24. 2024

사랑에 묻고 사랑이 답하다 - 하나

파란만장 사춘기지만 괜찮아! / 괜찮을리가 없잖아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많이 할 사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첫 돌이  되기도 전에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사랑에게는 한국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4년 전  갑자기 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고 아직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걱정할까 봐 수술 사실을 숨기고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나의 배려는 오해가 쌓여서 아홉 살부터 시작된 사랑이의 사춘기는 가족들이 모두 걱정할 일이 되었다. 

학교도 가기 싫어지고 자신감도 낮아진 것 같았다.

아마 관심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함께 놀아주던 언니와 오빠는 성년이 되어  바빠져 함께 하는 시간이 

없어지고 혼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구도 없고 학교 생활은 재미도 없고 자꾸 자신감을 잃어만 갔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모두가 사랑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관심을 덜 받아서 서운한 것만 생각했을까.. 이렇게 설명해 주었으니 

긍정적으로 변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이가 최근에 좋아하는 웹툰 보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위해서 사랑이가 좋아하는 웹툰작가에게

편지까지 써서 초판책까지 구해줬다. 

사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면 그러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그려달라 요청하기도 한다고 하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좋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파란만장한 사춘기지만 분명 성장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분명 멋지게 성장할 거라고 조언해 줬다.

떨어져 있으면서 사랑이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름 잘 설명해 주고 조언을 해주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잘 해결된 줄 알았다.


남들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울 나눠주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아빠가 한국으로 홀로 떠나고 가족들은 각자의 생활을 사느라 흩어졌을 때 나는 언어를 더욱 어른스럽게 

바꿔야 했다. 의젓하게, 침착하게 행동하면 어른들은 좋아했다.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단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에게 양보해야 '착한 아이'로 기억되어 사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게 싫었나 보다.

엄마는 내가 범죄사건을 안다고 하자 혼냈다.

오빠는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한다며 타박했다.

아빠는 나의 어휘력을 낮게 본다.

언니는 내가 한자 배우기 책을 읽는 것을 보더니 그런 것도 읽을 줄 아냐고 했다.

모두 내가 어른의 탈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면서 나에게 어린아이의 모습을 요구했다.

어린아이로서 하지 않을 행동과 말을 하면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배웠냐고 한다.

살기 위한 내 행동이 가족들끼리에게는 그저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된 탓으로 생각한다.

내 또래 아이들은 내가 말하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내가 어른의 언어로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질식해 간다.

나는 내가 가진 지식들이 싫다. 내 지식들은 나를 혐오스럽게 만든다.

아이 같지 않다고 너무 어른스럽다고 지적받는다.

나는 살기 위해서 어른의 언어를 배운 것뿐인데.

다른 이들의 지적은 자기혐오로 번져갔다.

내가 유일하게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그림과 글뿐이었다.

집착했다. 그곳에. 하루에 수십 장을 그리고 써 내려가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

홀로 외로이.

그렇게 나는 어린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른의 탈을 쓴 어린아이로 자라났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이쯤 되면 의문이 하나 들 거다.

문체와 과정이 다르다.

당연하다. 전에 읽은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니까.

파란만장 사랑. 사춘기지만 괜찮아.

이건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내가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 전부 아빠의 시선으로 본 내 모습이다.

제발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의 탈을 쓸 수밖에 없었던 나를 알아달라고.

아빠의 시선으로 쓴 나는 느낌표와 해맑고 긍정적인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진짜 내가 쓰는 글은 어둡고 칙칙한 심연의 모습이다.     

사춘기라도 괜찮다고? 그럴 리가 있겠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밀려오는 격동적인 감정들과 사투를 벌이느라 지친다.

스스로 손목에 차가운 금속을 대 붉은 실선을 그을 때마다 해방감을 느낀다.

삶에 대한 해방을.

물론 이 또한 어른이 되고 나면 사라지겠지, 근데 나는 아직 학생이다.

괜찮지 않다. 죽을 것 같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

그냥 말해도 돌아오는 말은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두루뭉술한 말만 돌아올걸 알아서 참고 삼켰다.

모두가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만 나는 당신들과 같은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내가 쓰는 언어는 한국어다.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핏줄 또한 한국인이다.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 나도 한나라의 민족이다.

매 순간 느낀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인사할 때마다 습관처럼 허리를 숙인다.

말 앞마다 아를 붙인다.

내 도시락은 한식이다.

나도 한국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 하나다.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나를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사랑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나를 그냥 한국인 중 한 명으로 이해하고 받아달라고.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되니까,

제발 나를 이방인 취급하지 말아 주세요.

나도 한 민족으로 받아주세요.     

아무것도 몰랐다. 안다고 생각했던 자녀에 대해서 정말 무지해도 이토록 무지할까?
사랑이를 제 멋대로 재단해서 내가 생각한 틀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조율하고 있는 줄 알았다.
사랑이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쏟아부어주면 해결될 줄 알았다
사랑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대로 인정해줬어야 했는데 
부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까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마터면 사랑이를 돕는 게 아니라
죽일 뻔했다. 
계속해서 힘내고 이 악물고 버티는 아이의 몸부림을 눈 감고 제멋대로 상상하는 판타지로 만들뻔했다.
사랑이 내게 답하더라.
"아빠는 날 판타지로 표현한다고."
변명이지만 어떻게든 사랑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사랑이는 그 모든 것을 알지만 힘든 것은 힘들고 극복이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동화 같은 해피엔딩은 오지 않았는데 멋대로 다음 단계로 행복한 결말로 혼자서 상상을 했다. 
사과를 했다.
우리의 진짜 대화는 나의 어리석음을 사과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았던 것이다. 
격려와 조언이 아니라 사랑이의 외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였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글의 시작도 맺음도 사랑이의 동의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일방적인 상상이 아니라 사랑에 묻고 사랑이 답한 모든 사실을 그대로 기록될
우리들의 대화이자 몸부림이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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