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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Jul 21. 2024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살아간다.

브런치에 대한 감정은 미묘 달짝 애매하다.

5년간의 투병생활에서 돌파구처럼 뭐라도 해야 살아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누워서 할 수 있었던

도전이 바로 '브런치 작가'되는 것이었다.

어릴 적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이 세상에 엮어 살다 보니 중년이 되어 이제야 글을

다시 써 보았다.

하지만 3번의 도전을 했지만 전부 탈락이었다.

기대를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야지 했었지만 3번이나 선정이 안되고 나니 오히려 좌절감이 더

많아지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리고 브런치작가 선정 누가 하길래 저려냐 하면서 그들을 탓했다.

그리고 브런치가 뭐라고 그냥 글은 자유롭게 쓰면 그만이지라면서 처음 목표에서 원래부터

그런 도전은 크게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러나 되고 싶었다. 사실은..

그렇게 무엇이라도 되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다.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간절하게 하지 못하는 처지라고 할까.

실패와 좌절이 가져다줄 충격이 크게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되기 도전은 잊히고 있었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보면 오랜 장기수가 가석방을 받고 싶어서 노력하지만 매번 가석방이

탈락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도소 생활에서 흠잡을 때가 없고 자신은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언급을 하지만 매번 떨어지니깐. 가석방 심사위원들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고 포기한다.

그렇게 마지막 가석방 심사할 때 자신은 사회로 정말 나가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두렵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가석방이 통과된다.

몇 개월 후에 다시 브런치 작가 도전을 하면서 그냥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형식이나 될 것 같은 소재의 글이 아니라 그냥 솔직한 이야기를 써봤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잠시 후에 밀려오는 감정의 물결에 온몸이 떨리는 듯하면서 무엇인지 모를 눈물이 떨어졌다.

삶이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낙하에서 겨우 절벽에 나뭇가지에 걸려서 멈춘 느낌이라고 할까?

그냥 신이 났다.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다는 특권 같았다.

그런 생각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지 몰랐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수많은 브런치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맞아, 이 세상에는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아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서없이 혼란스러웠는데 그냥 그런 것들 다 잊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어보자고 시작한

글을 엮는 것이 어느덧 마지막 장이다.

그냥 그렇게 마침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만큼이나 절박했을지 모른다.

누구나 사연이 있고 저마다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자신의 가시가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것처럼

얼마 되지 않는 공감능력이지만 이런 나도 살아가고 있으니 오늘을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기를

누군가에게.. 내가 이곳에서 또는 세상에서 얻었던 한번 더!라는 의지를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록 이렇게 조용히 쓰다가 마치는 글이지마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이 글의 시작은 약 2년 전부터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시간이 빠르고 상황은 많이 변하고 있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이렇게 버티고 있었던 덕분에 아이들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고

재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라는 것을 받는 것에 더 이상 낯설지도 않고

약해 보일까 봐 조마조마 살던 지난날과 다르게 솔직히 자신을 인정하기도 하고

여전히 쌓인 문제들은 많지만 어차피 이것들은 어떻게 살던지 세상에서 결국 생겨나는 것들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이런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희로애락(喜怒愛樂)이 아닐까?

절박함은 좌절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소중함을 찾게 해주기도 하고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고 몸부림치고 그것이 실패로 낙심되기도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성취감은

희망을 던져주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5년의 투병생활, 4년 재활의 끝에서 여전하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 있다.

자유로웠다고 말하는 지난 시간들도 결국 보이지 않는 형식 안에 있었던 것이고

계약직으로 일하면 생각으로만 짐작하던 현실을 겪으면서 받아들임이 더 넓어진 것 같기는 하다.

치열하게 조직 안에서 정치를 하기도 하고 승진을 위한 몸부림치는 회사원들의 숙명 같은 것들을

더 이상 비웃던 지난날의 아웃사이더 난 없다.

모두가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해지고 싶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정해진 답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니깐. 반박 시 당신의 말이 다 맞을 것이다)

그냥 정해 놓았던 그것이 가치관이나 신념이든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고 거짓말처럼 많은 것들을 얻을 수도 있고 별다른 변화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의 억울함, 환희, 슬픔, 공허 등등 - 어떤 감정이든 존재하고 그것을 좋게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 들고 있고

그것을 악화시키는 사람 들고 있고.

타인에게 가급적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고 싶으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계약직으로 이곳에서 일하면서 어려움도 도움도 받지만 시기와 미움도 공존하더라.

얄궂게 결국 같은 계약직인데도 그 안에서 차별이 있을 거라고 더 노력하는 것도 아부처럼 보기도 하더라.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참..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 배타적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것들을 이제야 공감하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에서 사람이니깐 저럴 수 있다.라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사실 난 어릴 때 생각을 마치 신념처럼 갖고 살아왔다.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채 어른인 척. 그런 척. 역할을 부여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항상 괜찮은 척, 대범한 척, 포용력이 있는 척, 참으로 겁도 많은 아이가 어른인 척 살아왔다.

조금씩 솔직하게 주변에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자신들처럼 겁나는 것들이 많고

부모로서 자신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나 보다.

요즘은 되려 내게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해준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아이들을 멋대로

재단하고 그것이 아는 것이라고 심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부터 시작인데도 말이다.

늦었지만 그렇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경청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마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의 최선이다.


건국일기의 주제는 이것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물론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건국일기의 여정은 이제 곧 끝날 것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어찌 되었던 돌아가야 한다.

당장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결국 빚청산이라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물론 고작 2년의 퇴직금으로 빚을 청산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던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은 된다.

그간 일을 하면서 배달 알바, 공모전 등으로 조금씩 보태면서 살아왔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어렵다는 생각에 한숨이 새어 나오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면서 웃을 수 있다.

브런치도 결국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지 몰라도 버티고 써 내려왔고 마침까지 오지 않았나!

나중에 이불 킥하면서 이 글들을 다시 읽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난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내 흔적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브런치 망하면 사라지겠지만.. 안 사라졌으면.. ㅎㅎ)


내 삶이고 내 운명이겠지만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대학교에 와서 이렇게 즐겁게 일하면서 살게 될지 몰랐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 현실적으로 반토막의 반토막의 반토막이 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결국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어떤 곳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과 차별은 어차피 존재하는 것이라 그건 쩔수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주어지는 것은 그만큼의 행복이다.

어차피 가진 것도 별로 없어서 정리할 것은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책상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봐야 책 몇 권, 노트 몇 권, 캘리연습용 이면지(이것 독학해서 아르바이트하려고 했는데 실패

-포기는 아니다)

붓글씨 연습(이것도 유튜브 해볼까 했는데 아직 지렁이가 기어 다니고 있다), 등등

참 부지런하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완결된 것은 없다.

포기하지 않았으니 여전히 진행 중인 것들이 많다.

건국에서 만난 인연들, 참 고마웠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내일이 오면 그 내일의 오늘도 결국 난 살아낼 것이다.

웃으면서 때로는 웃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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