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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Jul 14. 2024

이번 여정의 마지막 가을을 향해서

갈 길을 알고 걸어가는 것과 예측불허가 공존하는 삶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회적 제도에 의해서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간다.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기본 소양을 쌓는 것이 교육이고 전문적인 공부를 위한 곳도 있다.

그를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게 된다.

사실 공부라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언제부턴가 사회적으로 검증되었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집중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설계되는 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맹신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사회에서 보통 평가를 받는다면 두 가지는 필수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엉뚱하다' '일은 잘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조직문화에 약간은 순응을 못한다거나 일은 잘하지만 역시 조직 위계질서에 대해

좀 거슬린다 정도가 평가의 대부분이었다. 

아웃사이더 같은 기질도 한몫을 했지만 출세에 관심이 없었기도 하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어느 정도 조직문화를 존중하기는 해야 하는구나 정도는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결심한 것처럼 안 했던 것과 반대로 선택하겠다고 

어느 정도 실행하면서 살고 있는데 큰 차이는 없지만 분명 달라진 것은 있다. 

이제 혼자서 일을 다하려고 하지도 않고 도움도 받고 부탁도 하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쉽지 않았지만 점점 하다 보니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 보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할 것이다.

부탁이라는 것은 살다 보면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본인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정확하게 어렵다기보다는 젊은 나이에 결혼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치관을 부여해서 혼자서 해결하고 

부탁하지 않고도 살아간다는 참 유치할 정도로 무모한 가치관을 신념처럼 살아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가지 잡기에 능해지기도 하고 일에 대해서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일처리로 인정도 받았다.

그것이 자신감이 되고 결국 자만까지 가게 되었지만 사고 이후 친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친구가 

"이제야 정말 친구가 된 기분이야'라면서 그동안 항상 완벽한 척 살아가는 게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속마음을 이야기해 주니깐 네가 날 친구로 정말 생각하는구나 -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일부러 완벽한척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아~ 남들에게 난 이런 이미지였구나. 사실 소심하기도 하고 겁도 많은데 말이다.

어찌 되었던 지금 이런 것도 늦은 성장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은근히 고착화된 성격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어쩌면 스스로 부여한 역할놀이에 기인해서 잘못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좋은 성격인지 나쁜 성격인지보다 좋은 상황인가 나쁜 상황인가에 따라서 사람의 태도는 변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중적인 자신을 용납하지도 않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제외하는 성향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유뷰브 영상을 보면서 비판하는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본인은 정말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살면서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무단횡단을 한 적은 없나? 교통신호를. 일시정지선을 잘 지키는가? 쓰레기를 버린 적은.. 등등 그런 가벼운 

것들은 상관없는 것인가? 

그런 것을 다 따지면 불편한 사람인가.?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고리타분한 사람은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게 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런 사람은 조직사회에서

쉽게 배척을 당하게 된다. 참 복잡한 세상에서 다양한 고려를 하면서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은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는 것들을 체감하는데

사실 그런 것이 옳고 그르다 평가를 누가 할 수 있는가?

과거 성형수술을 한 연예인은 바로 매장당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을 밝히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명품이라고 불리던 것도 과거에는 사치품으로 비난의 소재였지만 지금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런지 크게 관심은 없다. 

다만 우리의 가치관, 신념이라는 것이 변한다고 해서 너무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너무 삐뚤어진 가치관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그런 것들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 시그널 4화에서 아들의 연쇄살인을 아버지가 덮어주고 거짓말로 수사를 망쳐놓고 끝까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거짓 자수까지 하면서 감싼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이를 동의하는 사람도 있는 게 세상 현실이다. 

보편적인 관점으로 비난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맞을지 몰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다고 해서 가치가 훼손된다고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한창 밀양성폭행 사건이 그 현실의 과거시점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묻히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였다. 지금의 비난이 과연 과거에는 없었을까? 미디어의 발전이 가져다는 확산속도와 집결의 

차이일 수도 있고 어찌 되었던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시그널에서도 과거의 형사가 현재의 형사에게 시대가 발전했으니깐 현재의 거기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겠죠라고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으로 파생되는 어둠은 여전히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정치, 종교, 회사 내 세력, 친구, 가족 등 모든 곳에서 분쟁과 이견이 존재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갈라서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한다. 

전과 다른 결정으로 살아가는 인생 2 회차라고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과거의 습관이 나쁜지 좋은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변화도 지금의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엄청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상으로 도달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 죽을힘을 다해 흔적을 남겨보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찾아올지 혹은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것은 그다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여기서 보내는 나의 연대기 일부분은 점점 결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고 내일도 잘 모르는데

엄청난 기대를 갖기보다는 오늘이 후회되지 않으려고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만 굽히지 않던 자세에서 조금은 휘어보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매력이라고 하는 지인도 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상관없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좋지만 매몰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내일을 만날 때는 조금은

당당하게 서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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