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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시간 Jun 22. 2023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어보았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회사에 다닐 때엔 출근해서 옆 사람 뒷사람 우리 사이의 관계들 보이지 않는 뒷얘기들이 업무가 많은 것보다 훨씬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여자 3명의 정직원과 4명의 여자 계약직으로 구성된 우리 팀에는 항상 많은 말들이 오갔다. 수면 위로 나오는 건 일부였고 대부분이 친한 끼리끼리 혹은 부장님께 sos 상담을 요청하고 나서 ‘누가 그랬다더라’하고 전해 들리던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여자가 대부분이었던 전 회사에서는 이런 예의 갖춰진 불편함은 없었는데 이 회사는 모두 남사원에 우리 부서만 여자가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겉으로는 다 좋아 보이고 사이좋아 보이는 듯했으나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어느 회사나 보이지 않는 기존의 분위기가 있는데 신입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우리 부서의 경우 더욱 그 특유의 젠틀한 어려움이 십몇년간 지속되 오는 듯해 보였다. 젠틀한 어려움이란, 말과 행동은 예의를 갖추어 행동해야만 할 것 같으나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이 있기 때문에 마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태도라고 정의하면 되려나..


나는 특히 계약직으로 근무가 처음이라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괜히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고 나서야 할 때와 나서봐야 좋을 것 없어 보이는 일을 구분 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일이 너무 많아 벅차서 힘들었던 정규직 담당자로 일했던 때가 자유로웠던 거구나 하고 미화되어 생각나기도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를 제외한 다른 계약직원들은 모두 1년 더 기한을 연장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 인수인계도 애초에 3주를 하고 나갈 수 있었으나 단순 업무에 해당되는 일을 그렇게 오래 할 필요가 없었다. 3주를 3일 못 채우고 퇴사일을 컨펌받아 그렇게 도망치듯 나왔다.


퇴사 후 1달 하고 3주가 지났다. 집에서의 하루는 정말 특별할 것 없다.

퇴사 전부터 이직을 알아보고 몇 군데 이력서도 넣어봤지만 면접에서 어필을 잘하지 못했다.

나이는 대리에서 과장급의 연차여야 하는데 중간에 2번의 이직과 1번의 사업 이력으로 한 직종의 전문분야가 없었다.


35세가 되어서 길을 잃은 것이다.

만 나이 33이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전에도 종종 길을 잃고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겼고 도전해보고 싶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솟구쳐 올랐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전과는 다른 기분이다.

정말 모르겠고 어렵다.

그저 내 앞에는 지금은 소용없어보이는 경력들과

내 뒤로는 40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무언의 긴장감.


어느 정도 겪어본 이 사회, 서울 한복판에 있는 두 번째 신혼집이자 전셋집에서 나는 거의 2달간 아무것도 않고 멍하니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


사회를 어느 정도 겪어보니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미친 듯이 하지 않으면 나를 위한 자리는 조용히 사라지는 것 같다.


가만히 있어보니 무언가 달라지지. 않더라.

가만히 있으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간간이 소식은 들린다.


누가 퇴사하고 카페를 차린다더라.

누가 결혼한다더라.

누가 유럽으로 출장 간다더라.


나와는 이제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인들의 소식에 이제 더 이상 큰 감흥은 없고 그저 오늘은 또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저녁에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도 오후 늦게까지 거실이 가만히 있다가 만보기에 50보가 찍혀있길래 주섬주섬 지난주 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책을 한 권 들고 스타벅스로 나왔다.


그래서 그나마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무료한 나와 마주하느라 노력한 나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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