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릴 적 집에서 먹던 밥상 위의 제육볶음,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던 매콤한 제육덮밥, 회사 식당에서 급히 한 끼를 때우며 먹던 그 제육볶음. 모두 다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나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제육볶음이 가진 그 다양성과 포용력 때문이 아닐까?
제육볶음은 참 신기한 음식이다. 요리사에 따라, 재료에 따라, 그날의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삼겹살의 고소함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앞다리살의 쫀득한 식감을 살릴 수도 있다. 고추장을 써 매운맛을 내기도 하고, 간장을 써 달콤함을 더하기도 한다. 때로는 당근과 대파가 잔뜩 들어간 화려한 제육볶음이 되기도 하고, 양파 하나로 단순하게 완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도 제육볶음은 제육볶음이다. 바로 그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육볶음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평가에 맞추려 애쓰는 나 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마치 모든 사람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셰프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내가 더 강해지기를 원하고, 또 누군가는 내가 더 부드러워지기를 바란다. 그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런 나를 돌아볼 때면 제육볶음이 떠오른다. 제육볶음은 고집하지 않는다. 그날 주어진 재료와 먹는 사람의 기호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제육볶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간장 제육이든 고추장 제육이든, 삼겹살이든 앞다리살이든, 결국 제육볶음은 언제나 제육볶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그렇다면 삶도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단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집착이 나를 옥죄어왔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나 자신을 점점 더 불만족스럽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까? 하지만 조금씩 내려놓는다. 완벽하려는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라는 것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간장 제육이 누군가로부터 외면받을까 두려워 굳이 고추장 제육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 나를 보는 사람들의 기대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어떤 사람에게는 부족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넘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의 기호가 다를 뿐이다. 제육볶음이 다양한 조리법을 품으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듯, 나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어떤 날엔 조금 더 매운 모습으로, 또 어떤 날엔 부드럽고 달콤한 모습으로.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제육볶음처럼 유연하고 살고 싶어 한다. 단 하나의 모습으로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나를 품어내는 삶. 그리고 그 다양한 모습이 사랑받을 수도, 때로는 외면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삶.
삼겹살이어도 좋고, 앞다리살이어도 괜찮다. 매콤해도, 달콤해도 상관없다. 나의 본질은 그대로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인정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