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감정을 기억할까, 기억으로 감정을 떠올릴까?

by 밤하늘 읽는 시간

우리는 종종 기억을 단순히 지나간 사건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이 오래 남고 의미를 가지려면 감정이 함께해야 한다. 강렬한 기쁨이나 슬픔, 두려움이 동반된 경험일수록 우리의 기억은 더 선명하게 남는다.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에서 느꼈던 설렘, 예상치 못한 시험 성적 상승으로 느낀 자부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아픔처럼, 강한 감정이 스며든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고 우리 안에 깊이 남아 있다. 반대로 특별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하루하루는 마치 안개처럼 흐릿하게 사라져 간다.


이처럼 감정과 기억은 서로 깊이 얽혀 있다. 우리의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떠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라는 기관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감정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기억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통해 강화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감정은 단순히 기억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특정한 경험에 강한 감정이 실렸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그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이 긍정적이었다면 우리는 그 경험을 다시 찾으려 하고, 부정적이었다면 그 경험을 피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비슷한 행복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이스크림을 찾게 된다. 반면, 발표에서 실수해 창피했던 경험이 있다면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고 불안해질 수 있다. 감정이 강하게 실린 기억일수록, 우리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감정은 욕망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좋은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은 욕망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아픈 감정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어떤 행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느꼈던 칭찬과 인정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더 큰 성과를 좇고, 누군가는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한다. 감정은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감정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같은 경험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이는 그 순간에 담긴 감정의 크기와 깊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감정이 실린 기억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긴다. 결국 감정은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은 기억을 통해 우리 안에 새겨지고,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된다.


우리가 행복을 원하고, 아픈 기억을 멀리하고 싶은 것도 이런 감정의 본질 때문일지 모른다. 기억은 감정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우리가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오늘의 선택을 이끌며, 내일을 꿈꾸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더 좋은 기억’이 아니라 ‘더 좋은 감정’을 남기는 삶인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이란 결국, 좋은 감정을 담고 있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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